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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월마트 앞 호박, 추석을 기다리는 이유

낯선 땅, 익숙한 명절의 의미가 깃든 순간

by 김종섭

​월마트 정문에는 큼직한 상자에 주황빛 호박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마치 한국의 추석을 앞두고 시장에 나온 햇과일처럼, 풍요로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사시사철 저장 과일이 넘쳐나는 요즘, '햇과일'이라는 말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희미해졌지만, 이곳 캐나다에서는 배나 사과 대신 호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호박은 과일이라 하기도, 채소라 하기도 애매모호하지만, 이곳에서는 가을의 첫 수확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추석은 없지만 추수감사절이 그와 비슷한 정서를 품고 있다. 호박은 핼러윈에는 악령을 쫓는 잭 오 랜턴으로, 추수감사절에는 풍요로운 식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등장한 호박은 한국에서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오랜 해외 생활을 하며 추석을 늘 기억은 했지만, 특별히 챙기지 않고 평일과 다름없는 날을 보내왔다. 그런데 올해는 모처럼 추석이 기다려진다. 며칠 전 한국에 있는 큰아들이 추석을 맞아 캐나다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수하물로 부칠 캐리어 두 개를 준비했다는 말에 한국에서 가져올 만한 물건들을 주문했다. 한인 마트에 가면 웬만한 생필품은 다 있지만, 그래도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차이가 나거나 이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추석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새 옷, 새 신발, 그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했던 그 설렘이 추석을 기다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잊고 지냈던 그 마음이 아들의 방문과 그가 가져올 물건들로 인해 다시금 피어났다.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명절을 보내는 풍경은 이제 여행이라는 의미로 전환된 지 오래인 것 같다. 한 달 전부터 기차표를 예매하며 줄을 서던 풍경도 이젠 인터넷으로 옮겨갔고, 고향 방문보다는 가족 중심의 여행이 우선인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내게 추석은 여전히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올해는 월마트 앞 호박이 가져다준 작은 설렘으로, 먼 타국에서도 추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아들을 기다리며 한국의 가을을 함께 맞이할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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