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삶의 정원에서 계절을 담는다
가을이 오고 있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운 기운이 감돈다. 뜨겁게 피어나던 여름꽃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베란다는 또 다른 계절의 빛깔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몇 년 전부터 가을이 되면, 봄과 여름 내내 피고 지던 꽃들을 저렴하게 파는 대형 마트를 찾곤 했다. 올해는 특별히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지만, 길게 줄기를 늘어뜨리는 ‘에메랄드 앤 골드’ 화분을 70% 넘게 할인하길래 두 개를 사 왔다. 사실 여름 내내 키우던 아이비가 잎마름병으로 시들어가, 다른 잎에도 전염되지 않도록 줄기를 모두 잘라내야 했다.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식물을 찾던 차에, 에메랄드 앤 골드가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아왔다.
이번에 들여온 ‘에메랄드 앤 골드’를 아내는 주방 한쪽, 베란다가 보이는 자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책상은 가끔 컴퓨터용으로 쓰려했지만, 이번에 사 온 식물을 올려 두면서 다시 화분 받침대가 되어 버렸다. 그 책상은 원래 다리가 망가져 베란다에서 화분 받침대로 쓰이다가, 전자 올겐 다리를 붙여 다시 고쳐 놓은 것이었다. 작은 공간 하나에도 생활의 풍경은 이렇게 달라진다.
베란다에는 작년에 사 온 제라늄을 비롯해 여러 다년생 식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라늄의 매력은 단연 사계절 내내 꽃을 피운다는 점이다. 특히 겨울에도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모습은 계절의 경계를 넘어서는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베란다 식물들은 가을철 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 온 것들이지만, 매일 물을 주고,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며 정성을 쏟다 보니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으로 주인에게 보답한다.
올여름에는 예상치 못한 사고도 있었다. 식물들을 위해 강한 햇빛을 차단하려고 차광막을 설치하다가, 작업 도중 의자에서 미끄러져 창문 쪽으로 떨어지면서, 팔이 유리에 부딪혀 13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순간은 아찔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작은 공간에서 꽃과 식물을 가꾸는 일도 때로는 위험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무엇이든 애정 없이 머무는 것은 없다. 반려동물, 사람, 그리고 식물도 마찬가지다. 관심과 손길이 닿을 때에만 관계가 깊어지고, 비로소 풍요로움이 찾아온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정원에서 마음을 돌보는 행위다. 매일 아침 꽃과 잎을 바라보는 순간, 베란다는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누구에게나 계절을 품고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공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