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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도서관 진열장 부스에서 미리 만난 추석

잊고 살았던 명절의 의미, 유리 진열장 속에서 다시 마주하다

by 김종섭

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간, 캐나다의 한 도서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똑같은 루틴의 시간을 보냈다. 잠시후, 오랜만에 책을 보려고 반대편 서고 쪽으로 옮겨갔다. 어린이 열람실과 마주하는 입구에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익숙하고도 반가운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투명한 유리 진열장 안에는 환하게 전등불이 켜져 있고, 고국의 향기가 담긴 작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각국의 풍경이 모여있는 부스가 아니라 유일하게 한국 부스만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맨 위에는 'Chuseok'이라는 영문 단어가 크게 적혀 있었고, 그 바로 밑에는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라는 정겨운 한글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림 속 아이들은 송편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어, 마치 먼 이국의 땅에서 고향의 가족들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캐나다 도서관에 마련된 한국 추석 전시. 한국의 전통 명절을 알리는 포스터와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추석이 정확히 언제인지 몰랐지만, 대략 10월 초순쯤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진열장을 본 순간, 혹시라도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 건 아닐까 싶어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검색해 보았다. 10월 6일. 아직도 한 달가량이나 남아 있었다. 진열장 안에는 한복 입은 모습, 송편을 빚는 손길, 흥겹게 강강술래를 추는 풍경이 담긴 안내판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만난 우리네 명절 이야기가 벌써부터 한 편의 수필처럼 조용히 마음을 울렸다.


사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추석이 휴일도 아니고 평범한 날일 뿐이라, 명절의 의미를 잊고 산 지 오래되었다. 추석보다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에 지내는 추수감사절이 어쩌면 더 명절다운 명절로 느껴져 왔다. 한국에서는 추석이 가까워지면 마트나 백화점에 추석 상품이 진열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직원들의 모습에서 미리부터 들뜬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들뜬 기분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 한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진열장을 보면서 왠지 모를 추석을 미리 맞이하는 듯한 설렘이 밀려왔다. 캐나다 도서관의 기획인지, 한인 사회에서 한국을 알리기 위한 일환인지는 모르지만, 감개무량함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강강술래, 송편, 이처럼 화기애애한 추석을 알리는 진열장 속 모습과는 달리, 요즘 한국에서는 명절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기사를 추석 전에 자주 접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풍경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시대의 변화지만, 이방인이 된 내게도 예외가 아니다. 장식장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나의 이유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아직 추석이 멀리 있는데도,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라는 문구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마치 성탄절을 한 달 앞두고 백화점 중앙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설레는 기분과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 추석이 되기 한 달 전부터 마트나 백화점에서 추석 선물 판촉행사가 한창이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판매원들의 모습에서 설레는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목격한 진열장의 모습처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만은 풍성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멈춰 서서 바라보았던 것은 단순히 추석 전시물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잊고 살았던 고향의 추억과 정겨움, 그리고 이국에서 살고 있는 한 이방인이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오마이 뉴스 https://omn.kr/2f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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