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이제 함께 맞이하는 두 번째 삶의 시작
아내가 오늘 마지막으로 출근했다. 결혼 전, 나는 아내가 전업주부로 살아주길 바랐다. 두 아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전업주부로 지내던 아내는 유학을 전제로 캐나다로 이민 와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이 어느덧 18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아내는 오늘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퇴직과 은퇴는 다르다. 퇴직(退職)은 ‘현직에서 물러남’을 의미하지만, 은퇴(隱退)는 ‘일선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지냄’을 뜻한다. 퇴직은 다시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은퇴는 영원히 일에서 떠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내는 올해 쉰여덟 살이다. 주부이자 직장인으로 1인 2역을 감당해 온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다시 주부의 자리로 돌아왔다. 법정 정년은 예순이지만 현실의 은퇴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요즘은 “힘이 닿는 데까지”라는 말처럼 은퇴의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주부로서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소임이 있기에 ‘주부 은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아내의 마지막 출근을 축하해 주어야 마땅하지만, 선뜻 그 말을 건네지 못했다. ‘수고했다’는 인사는 할 수 있어도, ‘축하한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내려놓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축하보다는 위로라는 말이 더 적절하게 느껴졌다.
캐나다의 연금 제도는 65세부터 지급된다. 다만 부부의 경우, 남편이 65세 이상이면 아내는 60세부터도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이는 오랜 세월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살아온 아내의 노고를 일정 부분 인정한 셈이다. 마치 두 사람이 나란히 걷되 보폭이 다르듯, 제도 또한 개인의 상황에 맞춰 배려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업주부와 직장 여성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당시 일하는 여성은 숫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가 함께 벌어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아내의 마지막 출근은 단순히 한 개인의 직장 생활의 마무리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함께 맞이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아내보다 1년 먼저 은퇴했다. 일이 없는 하루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빨리 지나갔다. 처음에는 늦잠도 마음껏 자보고 싶었지만, 자유스러운 시간이 주어지자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늦잠조차 마음 놓고 자지 못했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은퇴의 삶은 의외로 긴장과 허전함이 함께했다.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우리 부부는 숲길을 자주 걸었다. 하루 1만 2천 보, 한 시간 반 남짓 산책하면서 다가올 은퇴의 리허설을 치른 셈이었다. 앞으로는 루틴을 세워 하루를 살기로 했다. 오전에는 걷기, 오후에는 각자의 취미와 영어 공부, 저녁에는 동네 한 바퀴 산책이 이어진다. 은퇴 이후의 빈 시간을 채워가는 방식이다.
사흘 뒤면 한국에서 큰아들이 캐나다 집에 도착한다. 도착하는 그날이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지난 18년간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살아온 아내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축하라는 말 대신, 함께 걸어온 길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응원이 준비돼 있다.
우리 부부처럼 많은 이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일에서 물러나도 삶은 계속된다. 때로는 축하보다 위로가, 격려보다 공감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음을, 아내의 마지막 출근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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