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발걸음을 알아챈 낯선 산책길, 고목이 빚어낸 한반도의 지도
산책길에서 가끔은 특별한 경험을 한다. 산책은 단순히 걷는 일뿐이 아니라, 산책길에 마주하는 타인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관찰의 시간이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마치 부부 싸움을 한 듯 멀리 떨어져 걷는 노부부가 있는가 하면, 다정히 보폭을 맞추어 걷는 부부도 있었다. 이렇듯 부부들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특징이 보였다. 생기 넘치는 연인들의 발걸음과 깊은 대화에 빠진 지인들의 모습에서도 저마다의 색깔이 묻어난다.
오늘 산책길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두 여인을 발견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아내에게 "저분들, 틀림없이 한국인일 거야"라고 확신하듯 순간 말을 했다. 이목구비를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지면을 딛고 나아가는 특유의 리듬과 보폭이 내 눈에는 무척 익숙했다. 잠시 후 우리 곁을 지나간 두 여인은 정겨운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언제부턴가 인종마다 걸음걸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특유의 보폭과 반동이 있다. 우리가 뒷모습과 발걸음만으로도 가족을 금세 알아채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는 한국인만의 리듬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타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이런 사소한 움직임조차 동질감을 확인하는 예민하고 본능적인 눈썰미가 된다..
매일 반복되는 산책길 위에서 유독 한국인들을 자주 마주친다. 그중에 건강을 위해 맨발로 흙길을 걷는 고집스러운 한국인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인자한 모습의 노부부와 눈인사를 주고받다 보면 가끔은 이곳이 한국의 어느 동네 산책로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국적 불문의 다양한 언어가 섞여 들려오는 이국적인 숲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발걸음과 눈빛만으로도 묘한 유대감을 나눈다.
산책로 한쪽에는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나무들이 즐비하다. 그중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사하여 거대한 밑동만 남은 고목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산책로 풍경이기도 하다. 성인 두 사람이 팔을 벌려도 감싸 안기에 턱없이 부족할 만큼 거대한 크기다. 겉과는 달리 속이 비어버린 그 모습은 마치 숲 속에 작은 나무 울타리를 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간절히 품고 있는 그릇처럼 때론 작아 보이기도 한다. 평소 그 어두운 공간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던 나는, 오늘 카메라를 든 손을 나무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렌즈를 하늘로 향하고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액정 속에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반도 지도 하나가 그곳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우연히 비슷한 모양을 한국 지도로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해안선의 굴곡과 전체적인 형상이 너무나 닮아 있어 순간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오래된 고목의 내부가 가장 가치 있는 프레임이 되어 고국의 모습을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떨어져 형상마저 분간할 수 없는 거리에서 걸음걸이만으로 동포를 느끼는 눈의 정확성, 그리고 나무속에서 발견한 지도의 형상은 과연 우연일 뿐일까. 걸음걸이를 알아보는 것이 내 잠재의식 속 그리움의 발현이라면, 나무속 비어있는 공간이 보여준 하늘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나무는 제 속을 다 비워내면서까지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고국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비어있는 고목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여전히 우리가 잊지 못하는 풍경이 살고 있었다.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이 지도를 품은 고목이 친구처럼 반가울 것 같다. 사진 속 한반도의 지도는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