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 가장 어려운 숙제, 잘 노는 법을 연습 중

아들의 낡은 올겐을 꺼낸 아내와 다시 기타를 잡은 남편

by 김종섭

아내는 오늘부터 연초 계획에도 없던 ‘악기 연주’를 일과에 하나 더 추가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쓰다 창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전자올겐을 꺼내 서재 책상 바로 옆, 가장 손이 닿기 쉬운 자리에 나란히 배치했다.

사실 나는 '기타 배우기'를 올해 목표로 내걸었다. 그런데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기타 줄 한번 제대로 튕겨보지 못하고 있다. 기타 연주는 학창 시절부터 품어온 로망이었다. 하지만 늘 생각만 앞설 뿐, 계획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혼자 하는 독학의 벽에 부딪혀 하루 이틀 손대다 포기하고, 그 약속을 또다시 일 년 뒤로 미뤄왔다. 결국 지금까지도 새해 계획표에는 늘 ‘기타 배우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던 아내는 코드 연습만 반복하니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 같다며, 먼저 쉬운 코드로 시작하는 노래 한 곡을 정해 ‘완주’를 목표로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올겐을 설치하자마자 자연스럽게 그 앞에 앉았다. 일단 쉬운 노래 한 곡부터 완성하겠다며 오전과 오후로 시간을 나눠 짬짬이 연습하더니, 결국 간단한 곡 하나를 끝까지 멋지게 성공해 냈다. 아내의 거침없는 실행력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자극과 함께 늦은 동기부여가 따라왔다.

노후에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예전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땐 별생각 없이 흘려버렸지만, 요즘 들어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특히 한국에 비해 정적인 해외 생활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더 조용하게 흐른다. 특별한 소일거리나 붙잡을 취미가 없으면 하루는 속절없이 무기력하게 저물기 쉽다. 은퇴 이후의 취미는 단순히 남는 시간을 때우는 여가가 아니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이후, 취미는 무너질 수 있는 일상을 붙들어주는 버팀목이자 삶의 리듬이 되어갔다.

몇 년 전, 부부가 함께 즐길 취미를 만들어보자며 아내에게 골프채를 선물한 적이 있다. 함께 필드에 나가겠다는 기대를 안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건강상의 무리가 찾아왔다. 아내의 허리와 컨디션이 나빠지면서 우리는 결국 골프채를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그 이후 아내는 취미를 급하게 우회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을 취미 목록에 올려놓았다. 결국 우리 부부의 취미는 모두 실내로 향했다. 실내 취미에는 나름의 한계가 있었고, 그 보완책으로 매일 12,000보 이상 걷는 산책을 하루의 중요한 루틴이자 또 하나의 취미, 그리고 건강 관리로 정해두었다.

나머지 시간은 자연스럽게 영화나 유튜브를 보며 각자의 리듬에 맡기기로 했다. 요즘 들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건, 사실 ‘잘 노는 법’이다. 우리 부부에게 잘 노는 법은 여전히 서툰 숙제로 남아 있다. 은퇴 후에는 무엇보다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방법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머리를 자주 쓰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흥미가 따라주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한다. 은퇴를 하고 나면 하루가 유난히 빨리 간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하루 일과가 지나치게 단순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서툴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들뜨는 요즘이다.

아내가 전자올겐을 시작한 오늘, 나도 내일부터는 기타 배우기를 다시 시도해 보려 한다. 같은 장르의 악기를 함께 배우다 보면 서로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건드려 주는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먼 훗날 두 가지 악기로 소리를 맞춰볼 수 있다면, 지금의 정적인 시간은 분명 더 살아 있는 하루로 변해 있을 것이다.

60대, 은퇴, 노후라는 수많은 수식어 뒤에 숨지 않고, 서로의 선율에 귀 기울이며 인생 2막의 이중주를 완성해나가고 싶다. 잘 노는 법을 배우는 일은 은퇴 이후 새롭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우리 부부가 마주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설레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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