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가장 먼저 다시 배워야 할 것들

짧은 기다림 속에서 배우는 마음의 여유

by 김종섭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부딪힌 문화적 장벽은 단연 ‘기다림’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몸에 밴 ‘빨리빨리’라는 DNA가 여전히 몸속 어딘가에 살아 있어 적응이 쉽지 않았다. 마치 다시 도를 닦듯 인내심을 연습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지체되어도 마음이 먼저 바쁘고, 조급함이 올라왔다.


반면, 캐나다에서 기다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지루해도,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기다림은 이곳 일상 속에서 작은 미덕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관공서나 병원처럼 꼭 필요한 곳에 전화를 걸 때면, 인내심은 더욱 시험대에 오른다. 수화기를 든 채 십여 분, 길게는 수십 분 동안 대기 음악만 들으며 기다려야 통화가 연결되는 일이 다반사다. 때로는 그 시간을 다 기다리고도 통화를 하지 못해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과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자, 안내 멘트가 끝나고 기계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이라 조금은 빠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기다려야 하는 일은 캐나다 어디든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익숙한 느림 속에서 오늘은 조금 색다른 장면을 마주했다. 아내와 함께 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는데, 아내의 손에는 우리가 주문한 음료 외에 아이스크림 하나가 들려 있었다. 햄버거가 약 5분 정도 늦어질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아 건네준 것이다.


사실 5분 정도의 기다림은 지연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시간이다.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조차 미안하다고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차츰 캐나다 생활 속에서, 기다림은 고객이 감수해야 할 ‘당연한 몫’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일상적인 주문 지체 속에서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캐나다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앞차가 조금 늦게 출발하거나 누군가 서행해도 경적 소리를 듣기 어렵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모습이다. 아마도 느림을 받아들이는 문화 덕분일 것이다. 어쩌면 기다림을 개인의 몫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으로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기다림 앞에서 조금 더 넉넉해지자고 다짐하지만, 몸에 밴 오래된 습관은 여전히 캐나다의 느린 문화 사이에서 길을 잃곤 한다.


​그러다 오늘, 서비스로 건네받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 안에 담긴 미안함과 작은 배려를 마주해 보았다.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조급함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음의 빈틈이 부드럽게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들의 느릿한 호흡에 조금씩 발을 맞춰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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