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애주기(life cycle)라는 변화 중심에 연관성을 두고 친구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친구와 장맛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옛말이 있다. 죽마고우가인생에서 제일 편하고 존재감 있는 친구라는 예시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라는 영역의 폭이 자꾸 좁아진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친구 관계의 몰락쯤으로 생각하면 맞을법하다.
친구란때로는 무조건 적이고 때로는 자신이 원하고 있는 충족요건이 성립되어야 하는 내심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조건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적인 일방 통행로는 존재하지 않았고 합리적인 조건의 거래가 암묵적으로 진행되었다. 지금에 생각하면 이 모든 과정이 단순한 생각 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 친구란 정의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전재로 하기보다는 유쾌함이 우선하고 있었다.《명심보감》 에서 말하는"급난 지붕(急難之朋)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라는 뜻과는 거리감이 있다.
《명심보감》에 담긴 또 하나의 내용을 주시해본다. "주식형 제천 개유 (酒食兄弟千個有) 급난 지붕 일개 무 (急難之朋一個無) "술 먹고 밥 먹을 땐 형. 동생 하는 친구가 천 명이나 있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와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즐겨갈 수 있는 일까지도 선심의 호의를 베풀어 호형호제 [呼兄呼弟]한 사이라고 불러 주었다.
"세 명의 친구를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익숙하게 들어왔던 친구 관계 지침서가 있었다. 친구의 중요성은 이뿐만 아니다. 상대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사귀는 벗을 보라"는 말까지 보태면 친구 관계가 차지하는 영역은 당연 으뜸인셈이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친구들이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세월의 탓(?) 먹고살기 바빠서가 제일 선명한 변명일 수도 있다. "친구에게 연연하지 말아라, 출세하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친구이다" 어릴 적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교훈적인 말을 뒤늦게 깨달음에 동참했다. 사회적 친구라는 관계의 혼돈이 생겨난다. 주머니가 힘이 되어 간다는 필수요건의 동반적 관계, 왠지 씁쓸함이더해간다.
친구라 함은 이성적이고도 정서적인 핏줄이다. "굳이 친구라 정의를 내린다면 중년에 친구는 과연 무엇일까, 내 삶 안에 과연 몇 명의 친구가 있을까, "의문의 물음에 있어 나이로 개연성을 두고본다면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 변화가 우세할 것이라는답을 기대해 본다.
내게 있어 친구라는 정의보다는 친구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감의 평가가사뭇 궁금해진다. 삶에 비중 있는 무게감으로 다가온 친구가 있다는 것 분명 성공한 인생임에 동의한다. 친구들과의 오래된 시간의 공백이 이어져 가고 있다. 이유 없는 변명은 그들도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먼저 이유 없는 핑계를 친구에게 고백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