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타투를 했다

아들의 타투의 이해 범위를 어디까지 옮겨가야 할까,

by 김종섭

작은 아들이 차 안에 올라타자마자 다짜고짜 타투를 했다고 속삭이듯 아내에게 소곤거린다. 왜 느닷없이 타투, 설마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귀담아듣지 않은 태연한 눈치 었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파티 장소를 향해 분주히 차를 움직이었다.

어느 날 작은애가 발목 주위에 작은 활자로 가족 생년월일을 새긴 링 모양의 문신을 하고 들어왔다. 나름 가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표현을 담고 있었겠지만 보는 부모의 입장은 찹찹하기만 했다.


그 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발목 바로 위쪽 정강이 부분을 중심으로 커다란 무늬가 그려진 문신을 한 것이 파티 장소에서 지인의 눈에 확인이 되었다. 발목에 작은 문신을 애교로 이해하려는 시간이 채 아물기도 전에 중독처럼 밀려온 욕심의 부활이 정강이 일부분이 문신으로 피부가 손상되었다. 여기서 손상보다는 훼손(?)이라는 말이 부모 입장에서는 지독이 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아들의 문신을 보는 순간 주위의 시선을 내려놓고 격양된 어조로 짧고 명확하게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식으로서의 케어는 끝났으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될 것 같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는 첫마디가 단호했다.


여름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노출과 함께 옷에 가려져 있던 비밀스러움과도 같았던 문신을 한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눈을 자극한다. 문신의 모양과 색깔도 제 각각이다. 팔과 다리 이외에 다른 신체 부위까지 지나칠 정도로 문신의 반경은 넓어지고 신체부위에 성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혐오감을 느껴야 하는 감정 대신에 왠지 측은지심이 먼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길거리 행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던 입장이 관점에서 떠날 때쯤 내 아들의 모습이 길거리에 낯선 행인의 모습처럼 서 있었다.


아마도 본인에게 문신은 분명 멋있어 보이는 자신만의 또 하나의 창조적인 치장이었을 것이다. 멋있게 문신한 모습을 관대하게 받아 드려야 할 부모의 입장에서 인정하려는 용기가 없어서일까, 내가 아닌 다른 부모의 입장이었다면 나와는 다른 느낌으로 관대하게 인정해 주었을까 하는 의문도 사실상 궁금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순간 어디에 한 대 맞은듯한 멍한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타투는 요즘 젊은 계층 간에 대세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타투에 관해서 예민하게 생각하고 지나친 편견을 가진다면 꼰대라는 칭호를 면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예전에 문신은 힘에 상징 같은 존재이었다. 어쩌면, 힘보다는 상대를 심적으로 위협하고 제압하려는 전시적 효과의 도구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문신의 일반적인 이해는 평범한 이들 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폭들만의 상징적 전유물과도 같았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예전 잘못된 인식의 선입견을 깨고 일부 대중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타투의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과거의 올바르지 않았던 행적 때문일까, 인정 범위를 수용하기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미묘함이 사실 존재하고 있다.

변화의 시대의 흐름대로 대세에 손을 들어주고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타투에 대한 인식에는 익숙하지 않은 세대 간의 분분한 의견차가 있다. 당신은 지금 타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긍정적인 것에 손을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몸에 손을 된다면 실상 주저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일과는 다른 자신의 영구한 변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하는 일이 창조적인 것이라면 변해야겠지만 변화는 것이 왠지 거북하고 수용할 수 없는 것 까지도 변화의 시대에 민감하게 편입시켜 간다면 타투는 동의할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삶에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다. 변하지 않아도 될 상황까지 어쩔 수 없이 바뀌어 가는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부모로서 변하지 않아도 될 자식의 신체 부위까지 시대변화 이유라는 관계에 얽매여 묵인해야 한다면 왠지 낯설고 수용하기엔 모순이 될 여지가 남을 것이다.

세대 간 이념과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감이 떨어진다고 말을 한다. 시대가 변했다 할지라도 변하기 전 시대를 살아온 세상 정도는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 또한 변해가는 시대를 수용하고 살아가는 주역들의 관용일 텐데 현재와 앞은 있고 뒤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뭐 그까짓 문신 한번 했다고 호돌 갑을 떠냐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적당선이 진리임을 삶의 해법에서 깨달았다. 적당선이 지나쳐버리면 욕심이 생겨나고 이탈로 인해 무너짐의 섭리가 뒤따른다. 개성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서로의 개성을 인정해 주는 사고가 가족 간에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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