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그동안 입고 있던 옷의 일부를 옷장 깊숙이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났다. 무감의 세월인가 싶을 정도로 침묵한 시간의 흔적은 훌쩍 2년이라는 세월을 떠나보낸 뒤였다.
코로나로 일상의 지루함이 방안 가득히 묻어 있다. 이왕이면 집안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 내고 잃어버린 일상의 활력까지도 얻어 내기로 아내와 생각을 같이 했다. 우선 오랜 시간 주인의 손길이 멈춰있는 아들 옷장부터 정리하기로 하였다.
아들방 옷장 문을 여는 순간 오랜 시간 간택받지 못한 여러 벌의 상·하의가 옷장 깊숙이 잠들어 있음을 목격했다. 옷걸이에는 대부분 상의가 걸려 있다, 걸려 있는 옷은 대충 보기에도 아들 몸집을 맞추어가기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듯하다. 옷장 서랍을 열어보니 여러 벌의 청바지가 놓여있다. 청바지를 꺼내어 펼쳐 들었다. 청바지는 이미 아들의 허리사이즈 한계를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인해 선택을 받지 못하고 아들의 옷장에 남게 되었던 것 같다. 옷의 수명주기로만 두고 생각하면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아직은 입을 만한 옷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옷장에서 떠나 줘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옷장 속으로 아내의 손길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준우 아빠 이 청바지 한번 입어 볼래요?" 청바지 자체가 애. 어른 나이에 관계됨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점, 혹시나 남편 허리 사이즈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두가지를 아내는 순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허리사이즈는 물론 바지 길이까지 한 치 양보 없이 작거나 크지 않은 상태,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안성맞춤이라 해도 손색없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벌의 청바지를 덤으로 얻었다.
사실 며칠 전 청바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내와 쇼핑 길에 나섰다가 때마침 파이널 세일(Final Sale) 행사 중인 청바지를 저렴한 가격에 망설임 없이 한 벌을 사 입었다.
청바지는 다른 바지에 비해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 물론, 한때는 바짓단이 짧은 청바지가 유행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또 언제부턴가 청바지의 기존 형태를 변형한 찢어진 청바지로 유행의 패턴을 몰고 왔다. 하지만, 여전히 본래 평범한 형태의 청바지는 변형된 찢어진 청바지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지구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청바지만의 유일무이 불변의 혼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바로 위 형님과는 6살이라는 나이 터울이 있어 형의 옷을 대물림받아 입어 본 경험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주변 대부분의 가정은 1~2살 터울인 형제들이 유독 많았었다. 형이 입던 옷을 대물림받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대였다.
형제의 대물림이 없는 대가로 어머님은 옷과 신발을 사도 항상 넉넉한 사이즈로 사 오셨다.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들이 작아서 못 입고 못 신을 것을 미리부터 염두에 두신 근검절약의 정신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시대를 만난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은 옷과 신발이 낡아서 버릴 때쯤에 제 사이즈를 찾아갔다. 요즘 옷의 생명은 작고 낡아서 못 입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해가 빠르게 바뀌는 유행 탓으로 옷의 생명이 단명하게 된다. 세상은 모든 것이 풍요롭고 차고 넘친다. 쉽게 얻을 수 있음에 쉽게 버려지는 법칙의 모순이다.
형제의 대물림도 아닌 아들의 옷을 아버지가 물려받았다. 옷장을 여는 순간 아들 옷장에서 옮겨 온 청바지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청바지를 입을까,
망설여지는 순간이 뿌듯하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청바지를 챙겨 입었다. 아들의 체온이 느껴져 지는 순간이다. 아들이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