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정리하면서

입던 옷에 애틋하고 무게감 있는 사랑을 주고 싶다

by 김종섭

사랑의 시작은 가슴으로부터 찾아오고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치장하여 관계의 호응을 얻어가려 한다. 시작의 과정에는 사소한 모두가 사랑이었다.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일까지도 시작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모습을 통해 훨씬 더 만족스러운 변신에 성공한 거울 속 주인공을 통해 아낌없는 사랑의 미소를 보내었다.


일상은 수시로 손거울을 꺼내어 화장을 고치고 화장실 대형 거울 앞에 몸을 좌우로 돌려 옷맵시를 가볍게 더듬어가는 애교의 몸짓 사랑이 있었다. 만족감이 느껴지는 일은 누군가의 관심 어린 감정의 눈길이 멈추어 설 때라고 생각했다. 주위 시선 의식의 변화를 위해 꾸준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일, 옷을 갈아입는 일까지도 사랑하기로 했다.

체온의 온기가 필요하지 않은 계절에는 가볍고 활동적인 티셔츠와 반바지만으로도 부담스럽지 않게 옷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체온의 온기가 필요한 계절에는 겉옷만으로 불충분하여 두툼한 코트까지 옷장 수북이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각기 다른 계절을 보낼 무렵이면 한 번도 간택되지 못하고 지루하게 옷장을 지켜낸 옷의 아우성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새장 안에 새처럼 옷장 안에 갇혀 살다가 서랍장으로 돌아가는 옷의 사연이 왠지 씁쓸하다. 계절이 오는 길목마다 옷장에 갇혀있던 옷은 감각 없는 무정한 세월의 시간을 보내왔다, 주인의 무심한 손끝의 생각이 단순했던 것일까, 가벼웠던 서랍장은 다시 무게감을 느끼고 신음한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새로운 옷을 먼저 입어주어야 한다는 주인의 의무감 내지는 욕심 탓일까, 움켜쥐고 버리기 아까운 마음에 옷은 이미 옷장 안에 수몰된 유산과도 같았다.

"준우 아빠!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하고 계절을 보낸 옷은 이미 당신한테서 떠난 옷이니 미련 남기지 말고 그냥 버립시다"
늘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아내가 입이 닿도록 당부하는 말이다. 아내의 말처럼 사실 그러했다.

누구나 끊임없는 새로운 변신을 꿈꾸면 살아간다. 어떤 것이든 새로움에 눈길이 먼저 가고 호기심과 교착된 신선감이 생겨난다. 새로운 옷을 입었을 때의 느낌이 그러했다. 때론 자신만의 옷으로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옷도 있었지만 대부분 유행에 떠밀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나버려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개성 시대는 남에 시선과는 무관하게 의식 없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옷을 치장하는 예외 된 부분도 생겨나지만 대부분 남에 시선에 맞추어 입는 옷이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주관이 불분명한 시대적 판단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관계하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실용성 있고 편한 옷이 좋았다. 흐름에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값비싼 옷을 샀다. 아끼어 특별한 날에만 입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옷이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한 번도 바깥세상 구경을 하질 못하고 한치 망설임도 없이 또다시 장롱 서랍장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다가올 계절에 선택될 운명을 한 번쯤 기대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진정 내게 필요한 옷이기보다는 값 비싸게 산 옷이라는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시대, 가끔은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은 착각의 시대도 있었다. 의식이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아직은 예상하지 못한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고 아끼고 남겨둔 과거의 행적만을 고집하고 답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시대의 성장판이 멈추어진 융통성 없는 꼰대의 생각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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