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단상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간다

by 김종섭

며칠 전부터 치통으로 시달려 왔다.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게 볼이 부풀어 올라 얼굴의 균형을 잃어간다. 8년 전에도 같은 증상으로 진통제에 의존하다가 결국은 통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늦게 치과를 찾은 기억이 생생하다. 의사 선생님은 잇몸이 부어오른 잇몸과 어금니 상태를 살펴보시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치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어금니 회생 가능한 다른 의사의 소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발치를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오겠다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황급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치과 맞은편 쪽을 향해 주시하다가 오픈 사인이 켜져있는 치과를 발견했다. 사인 불빛을 쫒아 치과 안으로 들어갔다. 별다른 반응 없이 이번에도 의사는 발치를 권유했다.


신중하게 결정짓어야 할 치료라면 최소한 3번 정도는 병원문을 들락거리는 발품을 팔아 결정하는 것이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한 번쯤의 기회를 덤으로 얻은 셈이다. 스스로에게 위안과 희망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3번째 찾은 치과 문을 두드렸다.

"치아가 충치 하나 없는 건치십니다" "전반적으로 치아 상태가 좋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 시작부터 기분 좋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계셨다.

"어금니 상태로 보아 발치하기엔 아직은 젊고 아깝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발치보다는 자연 치아를 살리는 쪽으로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어떤 치료를 해야 하나요?"

"인공 잇몸 뼈를 이식하는 시술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씹는데 별 지장이 없을까요?"

"잘만 관리하면 십여 년 정도는 별다른 불편함이 쓰실 수가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희망적인 소견서를 내보이셨다.


한 번의 진료로 의사 선생님의 발치라는 판단을 믿고 결정했다면 어금니의 생명을 영원히 잃을 뻔했다. 그 후 어금니 상태는 별 다른 불편함 없이 건강하게 제기능을 다해 주었다. 8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잇몸이 붓고 어금니 통증이 시작되었다. 일시적 붓는 현상이라는 자가 진단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하는 진통제로 달래 보았다. 시간이 점차적으로 늘어날수록 잇몸 붓는 범위가 넓어지고 어금니 통증이 고통스러웠다. 8년 전 경험했던 증상을 잊고 있던 탓일까. 당시의 증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통증을 진통제 하나로 의존하고 버티어 내는 일은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엔 집 앞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발치라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이다. 반복해서 인공 잇몸으로 어금니를 재차 소생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의사의 발치 권유에 한치 머뭇거림 없이 동의했다, 간호사는 발치에 쓰일 도구를 챙겨 왔다. 잇몸 부위에 마취를 하고 잠시 후 발치 기구에 의해 어금니가 힘 없이 뽑여 나갔다. 소중한 하나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무거움과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이 엄숙해 온다. 순간 느껴진 감정, 솔직히 누구에게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맞는 표현일 것이다.

피로 얼룩진 어금니가 하얀 거즈 위에 놓여 있다."나의 어금니 그동안 수고했다" 말 한마디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50년 이상을 동거 동락한 몸 일부의 조각이다. 누군가는 어금니 하나 정도 가지고 호들갑 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조각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 치과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뽑혀 나간 어금니 주변이 움푹 파인듯한 느낌이 들어 혀끝을 깊숙이 잇몸 사이로 밀어 넣었다. 씁쓰름한 피맛이 혀 끝을 타고 전해져 온다.


자신의 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손에 잔가시만 박혀도 온몸에 진통을 참아 내지 못하고 아픔을 호소한다. 발치한 부위가 또다시 진통으로 밀려오기 시작한다. 뿌리가 뽑혀 내린 비옥한 땅에 절규하는 항변일지도 모른다.


어금니 가치에 잠시 머문다. 어금니는 크고 단단한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잘게 부수어 입속에 달콤한 입감을 제공한다.


세면대 앞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치아를 거울 속에 비추어본다. 양치를 하기 전이라도 눈으로 보고 느껴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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