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단체 카톡방이 열려있다. 카톡방에는 작은 아들이 읽지 않은 대화 글 하나가 항상 남아 있다. 대화의관심사는 주로 서울에 있는 큰아들과의 대화 내용이다.
큰 아들은 대학교에서 커뮤티를 전공했다. 전공과는 달리 아들은 축구에 열정이 남달랐다. 그렇다고 운동선수의 꿈을 키워왔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아들의 축구사랑 열정은 대학시절부터 창업을 꾸준히 준비해 왔다. 졸업과 동시에 스포츠 관련 창업을 시작하면서 아빠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함께 했던 2년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아빠는 1년 전 아들의 빈자리가 있는 캐나다로 돌아왔고 결국은 아들 혼자 한국에 남게 되었다.
성인이 된 아들은 아직도 사소한 하루의 일상까지도 카톡으로 소통을 한다. 아내는 딸 같은 아들을 두었다고 딸 가진 부모 부럽지 않다고 항상 입이 닳도록 칭찬에 후했다. 아들과 카톡으로 부족한 대화는 또다시 보이스톡으로 자연스럽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 애정 있고 교훈적인 아빠의 묵직한 한마디를 가끔씩 주문한다. 아들에게는 아빠의 말 한마디가 힘이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아들은 창업 초기아빠에게 온갖 사소한 부분까지도 의논하고 함께 고민해주길 원했다. 그때는 아빠의 사회생활 경험담이 나름대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전의태도와는 달리 확연하게 바뀌어 갔다. 모든 일을 혼자 고민하고 가끔은 결정을 위한 참고 정도로 조언을 구해오는 것이 전부이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들어내 보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왠지작아진듯한 생각에 씁쓸해져 온다.
이젠 아빠가 아들에게가 아니라 아들이 아빠에게 관심의 말 한마디가 아빠는 힘이 되어가는 반전의 세월을 가져왔다. 달리 표현하면아들에게 있어서 아빠라는 존재감이 아직은 살아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어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도 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캐나다와 한국 간에 시간차가 있어 어느 한쪽이 밤 시간을 좀 더 양보를 해야 통화가 가능하다. 오늘 있었던 사업성과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신바람 나게 설명한다.
"사업이 번창하여 앞으로 바빠지면 아빠가 할 일이 있겠네"
아들에게 아빠의 존재감이 아직도 남아 있으려니 하는 마음에서 넌지시 던진 말이다.
"아빠는 그동안 열심히 일을 하셨으니 이제는 용돈 받아 여행이나 다니며 편히 쉬세요"
아들에게 듣고자 하는 답이 이것이 아니었다. 물론 아들은 아빠를 생각해서 한말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존재감이 상실되어 가는 듯한 허탈감이 가슴에 먼저 와 닿았다. 아직까지는 아빠가 일할수 있는 능력을 인정해주길 바랬던 것이었다. 이제는 아들이 하는 일에 관여함으로 인해 어쩌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능력과 관계없이 나이라는 마법에 걸린다. 세대와 세대 간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다는 사회의 통속적인 관념도 한몫을 할 것이다.
어느 순간 거울 앞에 섰을 때 갑작스러운 자신의 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순간까지도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어 왔다. 이 또한 버티어 낼 수 없는 한계점이 오면 스스로 자격지심으로 인해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왔다.
하지만, 아직은 아들에게 용돈이나 받아가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에는 빠르다. 나이의 장벽으로 사회가 냉대할지라도 끊임없이 얻어가려는 노력이 있는 시간을 좀 더 길게 보고 행동으로 느껴가야 한다. 또한, 움직여 얻어지는 기쁨이 배가 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어느 가수의 "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 노랫말을 기억한다. 한때는 노랫말 구절구절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왠지 들으면 들을수록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늙어가는 것 분명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익어가는 것이라는 것에는 왠지 동의할 수가 없다. 이유는 갈수록 설 수 있는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만날 때 진정한 가치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서운하고 허탈한 감정은 나를 인정해 주기만을 바라는 이기심이 있었다.
요즘은 없던 소망이 하나 생겨났다. 아들에게 용돈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날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것이 소망 그것이다. 아들아! 아빠는 용돈이 싫다고 하셨어. 그 말이 아들에게는 진심으로 받아 드려 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