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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를 줍다

여름

한 여름밤의 꿈

by 김종섭

파도 소리 철썩 이는 밤,

검푸른 바다 위에 시 한 편 써내려 가고 한낮에 격렬했던 몸부림의 햇살은 여름밤을 보상하고 나섰다.


탱탱하게 익어간 풀잎은 성숙한 처녀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풀벌레 연주곡 하나 들고 나와 한여름밤을 태워간다.


한나절 태양 아래 붉은 물감으로 그려 나가던 화가는 피곤한 몸 뉘이며 자장가에 스며 잠들어 버리고.


휘영 찬 달빛에 물든 모래성에 그리운 바람 한점 파도에 밀려와 한여름 밤의 꿈을 꾸어 나간다.

내게 여름이 좋은 이유 한 가지 주저 없이 "어느 계절보다 하루의 길이가 길어서 좋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올여름은 왠지 여름을 극찬하기엔 다소 망설여진다. 내 생애 한국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폭염을 캐나다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초 여름부터 뜨거웠다. 84년 만에 처음이라는 40도가 넘는 폭염의 순간들, 사흘간의 폭염이 지속되던 날, 나는 현장 한복판에 하루 종일 서 있었다. 같이 폭염의 날씨를 경험했던 사람까지도 인내의 시간을 이겨낸 나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여름이 좋다. 격식이나 체면을 내세우지 않아도 될만한 계절, 굳이 옷에 치장하지 않아도 옷에 날개를 달아준 여름, 한낮에 작열하는 햇살의 세례 속에서도 그늘진 곳을 피해 여유를 얻어갈 수 있는 지혜를 여름은 우리에게 내어 주었다.


창문 틈 사이로 청량한 바람 한 줌 방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바람 한 줌에 하루의 피곤함을 내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는 일이 남아 있다.

아!

이래서 여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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