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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Oct 31. 2021

캐나다 노숙자의 삶

집 없는 노숙자 그들을 홈리스라 불렀다

살아가는 방법과 방식을 달리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노숙(露宿)자 또는 거지라고 불렀다. 캐나다를 비롯한 미국의 경우 노숙자를 홈리스 (homeless)라는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 어학사전에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그들은 대부분 게으름으로 인해 생겨난 경제적 빈곤자 대분이었고 그중에는 정신질환자술과 마약 도박을 일삼는 마약 중독자들도 상당 부분 노숙자 대열 포함되어 있다. 들의 눈은 초점이 거의 없다. 걸을 때에도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다리를 휘청거리며 걸었다. 노숙자가 머물다가 떠난 자리에는 마약 투약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주삿바늘을 쉽게 목격수가 있다. 손등에는 온통 주사자국과 멍자국이 외관상 쉽게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노숙자보다는 마약쟁이라는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가 대립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이미 2018년 대마초(마리화나)를 합법화하였다.


캐나다에는 특히 밴쿠버 지역에 유난히 홈리스 피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다른 도시는 대륙의 내륙에 위치해 있어 매우 춥지만 밴쿠버의 기후는 다른 도시에 비해 온화하기 때문이다.


홈리스라 함은 보편적으로 남자만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여자 홈리스도 적지 않은 양적인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녀들 중에는 대체로 가정폭력의 희생자들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여인들이 많았. 


캐나다 정부홈리스들에게 한 달에 두 번씩 생활 보조금 명목으로 돈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 보조금을 수령하는 날이 대부분 받은 비용을 하루도 못 넘기고 마약 사는 비용으로 거의 탕진해 버리고 또다시 거리로 내몰려 구걸을 되풀이하는 삶을 살아간다. 


대형매장에 가면 고객들은 구매한 생필품 일부를 노숙자들에게 돈 대신 도네이션 (donation)할 수 있도록 대형 모금함 박스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또한 돈으로 마약을 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측면에서 행해지는 기부 행사이다. 그뿐만 아니라 봉사단체를 중심으로 노숙자들이 밀집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무료 식사 배급을 제공하기도 한다.


구걸에도 한국 노숙자와 차이가 있다. 물론 문화적인 환경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 노숙자의 구걸 형태는 최대한 불쌍하고 안타까운 모습의 표정을 가지고 동정을 구걸하지만, 캐나다 노숙자인 경우매우 당당하면서도 의연한 모습으로 구걸을 한다. 구걸 장소 또한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의 노숙자인 경우 주로 지하철 계단이나 대중들이 오고 가는 통로의 후미진 곳을 구걸 장소로 사용하지만, 캐나다 노숙자들은 도심 한복판이나 복잡한 이동통로 중앙에 자리를 잡고 당당하게 구걸을 한다. 심지어는 피켓을 들고 도심 차량 통행이 많은 중앙 분리대 선상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량 앞으로 다가가 운전자와의 시선을 통한 "동정"을 구걸을 시도하기도 한다.


계절적인 변화와 날씨에 따라 구걸 방법도 달라진다. 비가 오는 날과 추운 겨울철에는 고객들의 왕래가 많은 쇼핑몰 입구 앞에서 컵 하나만을 달랑 들고 당당하게 구걸을 한다. 또한, 커피판매점이나 식당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출입문을 열어주고 닫아 주는 방식으로 구걸을 하기도 한다. 물론 노숙자 전부가 노력 없는 구걸을 원하지는 않는다. 길거리에서 악기를 연주을 주고 받는 대가성 구걸도 있다. 그들은 돈이 될 수 있는 구걸 장소 선택과 방법도 나름의 삶의 생존과도 같았고 그런 행동들이 수단의 지능일 수도 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젊은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는 일 년을 넘게 노숙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그에게 노숙 생활은 이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묻어 버리고 싶었을 것이라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답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고 했다. 우연히 또 기회가 온다면 굳이 거부하고 싶지 않다는 여지를 남겼다. 일반 정상인으로서는 쉽게 이해가 다가오지 않는 말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 못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듯하다.


노숙자들은 세상에 구애됨 없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삶은 내일이라는 희망이 없었다. 어쩌면 내일을 먼저 생각해 낸 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우선 요구를 채우고 배부르면 그것만으로 최상의 날이라는 것이 그들만이 생각하는 사고가 맞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만 존재하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동정심을 가지고 길거리를 유심히 살펴가며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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