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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pr 27. 2022

술의 예찬 <1>

네 가지의 감정을 술에 타 마셨다.

술을 마시다 보면 내 안에 또 다른 세상이 보여왔다. 한잔을 마시고 나면 속에서 긴장이 풀어지는 신호를 알려온다.


술의 종류가 다양한만큼 술을 마시는 이유도 다분했다. 오늘도 하나의 이유를 달았다. 술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유는 분명했다. 술은 늘 그래 왔다. 어떠한 이유에도 변명을 하거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취해야 하는 것에 사명을 다하였다. 술은 기쁠 때, 노여울 때, 슬플 때, 즐거울 때나 항상 곁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술의 의미는 네 가지의 감정과 함께 공존해가는 희로애락의 종합세트였다.


술은 용기와 때론 관용을 주었다. 하지만, 때론 만용도 존재했다. 한잔 마시고 취하고 나면 세상 모두가 내 것 같았다. 술이 쓰디쓴 날도 있었지만 , 어떤 날은 쓰디쓴 술이 오래가지 못하고 달콤한 맛으로 다가왔다. 한두 잔 마시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술이 술을 불러왔다. 기분 나빠 마실 때에는 한두 잔에 취기가 입가에 먼저 전해져 말끝이 거칠어졌다. 기분 좋아 마실 때 술의 본심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진심으로 와닿았고, 입 끝은 아름다운 이야기만 전해졌다.


한잔 술에 취하고 또 한잔을 마셔도 술이 고팠다. 밤새 토하도록 마실지라도 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술판이 끝나고 휘청거리는 도심을 빠져나왔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아침부터 온몸이 무거웠다. 하루 종일 속이 쓰려오고 비몽사몽의 세상이다. 밤샘한 술자리가 후유증이다. 어젯밤 취중에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불분명했던 느낌의 말들을 떠올려 보지만 입가에서 이미 떠나버린 말을 되돌릴 수 없었다. 말이 지나치게 과해 상대에게 혹시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항상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말과 행동이 개운치 않음에 후회를 하게 된다. 술은 입으로 먹되 말의 감정을 다스리는 해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입속에 술을 젖시어갔다. 기분이 좋다. 이 정도의 기분에서 추어야 할 술이 된 오늘,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예전에는 술을 좋은 사람과 함께 마셔가는 일이 일상이었다.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 가면서 마셨던 날도 있었다. 추억을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자신과 가족을 자랑하고, 그렇게 술 위에 안주삼아 나누었던 이야기의 색은 다양했다. 술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애주가라고 불렀다. 애주가는 술을 많이 마시고 적게 마시고의 차이는 아니었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부하지 않고 달려올 수 있는 사람우리는 애주가라고 불렀다. 


캐나다에서 휘청거릴 정도로 술을 마실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의 소주는 값비싼 양주로 변신해 있기 때문에 식당에서 취하도록 마시기엔 경제적인 한계가 주어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적으로 함께  마시는 일 보다 혼자 마시는 횟수가 많아졌다. 한국에서 흔히 가볍게 "한잔 합시다"라는 말의 효력을 점점 기억 속에서 잃어가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은 캐나다에서 한국  술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한국 술 문화를 내려놓기엔 아직은 의지가 약할지 모른다. 이 또한 시간이 비켜가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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