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밴쿠버의 표정

우산 없이 내리는 양만큼 비를 맞았다

by 김종섭

휴일의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의식 없이 창문 쪽으로 시선이 멈춰 섰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햇살 없는 하늘과 하루를 만났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몸을 일으켜 설익은 아침 창가로 몸을 바짝 기대섰다. 비 내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또 한 번의 의식 없는 움직임이다. 거리가 흠뻑 젖어 있다. 밤새 소리 없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핸드폰 열림 폴더 화면에는 일주일 내내 온통 비 소식이다.

옛날에는 지나칠 정도로 비를 좋아했었다. 우산 없이 오는 비의 양만큼 흠뻑 비를 맞으며 목적 없는 길을 걸었었다. 창밖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밤새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빗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고요한 밤, 빗소리가 방안에 시끄럽게 밀려와도 아무런 조건 없이 또 행복하고 좋았다.


비가 내리는 날,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내리는 비의 풍경과 함께 행복의 호흡을 나눌 수가 있다. 비 내리는 도심 빌딩 숲 풍경보다는 농가의 허름한 툇마루가 더 운치 있고 좋았다. 지금이라도 손만 뻗으면 산과 들이 닿을 것만 같은 지나칠 정도의 감성이 그때는 차고 넘쳐났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우산을 받쳐 든 연인들의 모습까지도 친근한 소리 되어 감성 비로 바뀌어 갔다.

어느 날부터 비와의 감성 거리가 차츰 벌어져 가기 시작했다. 귀가에 전해지는 빗소리 울림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하는 의심까지 생겨났다. 거센 빗소리와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들어내 보인 소낙비에 익숙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밴쿠버 비는 한국의 거세게 쏟아지는 소낙비와는 달리 가랑비와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 대분이었다. 요즘은 일상의 반이상 내리는 비에 지쳐 있다. 비가 내려도 비의 의식을 버리고 존재감을 외면했다. 계획 있는 날에도 비가 내린다고 날씨를 타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평상시처럼 오늘도 하늘이 내려주신 비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저항하지 않았다. 소리 없는 비의 저항,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밴쿠버 날씨의 현주소이다.


직업의 특성상 월요일. 목요일로 나누어진 휴일을 가지고 간다. 이틀을 하루의 반쪽으로 나눈듯한 느낌을 가지고 휴일을 보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 탓에 휴일 단 하루만이라도 맑고 투명한 날이길 소망했다. 소망의 마음 필요 없이 이번 주는 모두에게 공평한 한 주 내 내 비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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