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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Nov 14. 2021

바나나 세대

한국말을 못 하는 이민 2.3세대를 바나나 세대라 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비와의 전쟁이다.

비 오는 날이면 마땅히 갈 만한 곳을 찾지 못했.

"오늘은 어디로 갈까" 

혹시나 갈만 한 곳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모를 아내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글쎄요. 어디로 갈까요"

우리는 언제부턴가 둘 다 일이 없는 날이면 단 한 시간만이라도 문밖을 나서야 하루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준우 아빠 우리 몇 주 전 들려 보았던 골프 용품 매장 그곳이나 구경 갈까요"

아내는 몇 달 전부터 골프를 배우고 있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로 소소한 골프용품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쳐 버릴 골프용품점도 요즘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매장에 도착했다. 매장 중심상가 주변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 밀집 지역이다. 입간판에는 영어보다는 한자 표기가 더 쉽게 눈에 띈다. 이 지역을 올 때마다 캐나다가 아닌 중국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골프용품점 역시도 중국인이 운영할 것이라는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비 오는 날씨 때문인지 예상했던 데로 매장 안은 한산 했다. 간혹 종업원의 움직임만이 매장의 적막을 다.


매장 안을 둘러보며 아내와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 종업원이 다가선다.

"Are you Korean?"

그의 말은 캐주얼스럽게 짧고 단답형의 물음이었다.

"I am Korean"

질문한 대답의 기회없이 자신도 한국인이라고 먼저 소개를 다.

 "그런데 왜 한국말을 못 하세요?"

순간,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말투를 그에게 던져 버리고 말았다. 이미 상대가 한국임을 고 있는 상황임에도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자신을 한국인이라는 의사 표현은 상대에게 최소한 예의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가 어렸을 때 와서 한국말을 잘 못해요"라는 한국말만남겨 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조금 전 준우 아빠 말에 민망스러워 혼났어요"

아내는 젊은 친구 면전에 대고 면박을 준 것이 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쇼핑 내내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직원은 우리와 눈도 안 마주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역력해 보였다. 물론 이전의 직설적인 말은 다소 경솔했던 부분이긴 하다. 살갑지 않게 한 부분에 대해 후회스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온다.


퍼터가 오래되어 그립을 교환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 그립 하나를 아내의 골프화까지 챙겨 사들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가족이 캐나다 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은 빠르게 영어권 문화를 능숙하게 적응해 갔다. 때론 아들 둘이서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신기하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 후 7년의 긴 세월 끝에 가족과 캐나다에서 합류를 했다. 그 후부터는 애들의 능숙한 영어에 더 이상 관심을 집중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빠르게 영어가 능숙해지는 만큼  한국어 또한 빠르게 잃어갈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조바심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은 아들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학업 도중 캐나다로 옮겨다. 활동성이 강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도 가르쳐준 적 없는 웬만한 사자성어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한국어에 능통하다. 외국에 살다 보면 영어가 편하고 익숙해지기 때문에 한국어를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신념이 강하게 생겨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작은 아들에도 신념 덕분일까, 지금 상황은 한국말보다는 영어로 대화하기 편한 것은 분명한데 고맙겠도 아직까지도 혀 꼬부라짐 없이 한국말 전달이 명확하다.


아들이 주변 한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할 경우를 가끔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듣기 싫을 정도로 영어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충분히 서로가 한국말로 소등이 가능한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사회의 주변을 돌아보면 여렸을 때부터 정착한 세대 대부분은 모국어를 잃어버려갔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략 양적인 수치만을 비교한 것이다. 그들을 자칭하여 곁 모양만 한국인이고 언어는 물론 사고와 문화적인 것까지도 속은 캐네디언을 닮았다고 하여 우리는 그들을 바나나 세대라고 불렀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민 3세대들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거나 2세대일 경우에는 한국어를 잃어버리지 않고 영어와 한국어를 적절하게 생활안에 구사해 나가기도 한다.


언어의 중심은 주위 환경 영향력이 지배적인 듯하다. 특히 모국어의 경우에는 가정환경인 부모의 의지 또는 자식의 명확한 가치관에 따라 비중 있게 언어의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모의 의지가 결연하지 못한 가정도 있다. 현지에 살면서 한국에 살 것도 아닌데 굳이 모국어가 필요하겠냐는 생각이 절대적인 부모들의 입장도 있다. 괜스레 두 개 언어를 혼용하다 보면 혼돈만 가중시킨다는 의견까지 우세하다.


캐나다라는 이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불 분명한 삶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고 왠지 쉽게 납득할만한 정서로 다가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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