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섭 Dec 14. 2022

캐나다 이민 과연  행복한 삶을 보장해줄까,

노년기를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역 이민을 꿈꾸어간다.

이민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줄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민을 결정하고 떠난 사람, 이민을 긍정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이민이란 관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관망하는 사람,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국보다 좋은 것이 더 많다는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적응이 힘겹고 불편한 것이 더 많다는 사람도 존재했다. 한국과 캐나다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 민주주의 국가라는 각기 다른 국가적인 이념의 바탕부터 다르게 나누어져 있다. 어느 곳에서의 삶이든, 만족을 느끼는 순간 항상 불 만족이 존재한다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적응이 힘든 이민자는 고국에서의 몸에 베여있는 익숙한 습관을 버리지 못한 이유가 크다. 국가적인 체계와 이념이 개인과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좋든 싫든 마치 습관적으로  의무인 것처럼 고국에서 삶을 살아왔다.


요즘 들 직장 내에서 한국 이민자 1세대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다. 만나는 분들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하고 국가(캐나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층이다. 백세 인생에 노인의 범위를 가늠하기엔 다소 애매모호함이 있기는 하지만 연금을 수령하는 65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의 대다수는 역이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경제 활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역 이민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치과 치료부터 시작해서 노후에 찾아오는 예견되지 않은 작고 큰 질병이 이유였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한국 의료시스템과는 현저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병원은 몸이 아프면 언제라도 시간에 관계없이 지정 병원 없이 원하는 병원을 찾아 빠른 진료를 받을 수가 있다. 캐나다의 진료는 지정된 가정의 예약을 거쳐 이루어진다. 최종적인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전문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심지어는 해를 넘기는 사례 또한 빈번한 일상적인 진료 형태이기도 하다. 우선 진료를 받기 위한 기다림이라는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중증 환자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진료를 위해 기다려야 하는 대기일 수가 길다. 병원은 한정된 환자를 받을 수 밖에는 없기 때문에 결국 치료를 위한 대기 환자가 많을 수 밖에는 없다.



젊었을 때에는 먹고사는 것을 최우선적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왔다. 그다음의 차순위는 자식들의 진로 방향을 생에 전부와도 같은 희망을 걸고 살아왔다.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와 같았던 무심한 세월을 보내온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에 하나하나 심각한 수준의 적신호가 찾아오면서 뒤늦게 건강을 쫓았다. 하지만,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닌 근본적인 돈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지독한 근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캐나다의 삶은 사실 특징적으로  지루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가족 중심이라는 단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인 연계성이 낮다. 밤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캐나다에서의 삶은 지옥과 같다. 물론 전자의 관계성을 다른 방향에서 풀고 갈 수도 있겠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뒤늦은 중년들이 이민에 합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늦은 시기에 이민사회 적응 강도가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상징적인 직위를 누렸다 할지라도 현지에서 직업의 연계성을 가지고 만족도를 느끼기에는 갈길이 멀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이루어갈 수 있는 단계는 한계가 있다. 본인만의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환경을 좁혀가기란 역부족이다. 사회가 주체가 되어 어느 정도 사회성이 뒤받침이 되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다. 옛날에는 각자의 소원마저 통일이 우선이 되는지 알았다. 지금 나의 소원은 무엇일까, 또한 이민생활에서의 소원은 무엇일까, 이민 초기에는 소원이 있었다. 캐나다 문화에 대한 빠른 적응. 언어의 소통과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직장, 그리고 자녀의 교육 관심도가 그것이었다. 나에게 지금의 소원을 물어보았다. 거침없이 역이민이라는 것을 꿈꾸어가고 다.


행복의 보장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행복의 터전을 가꾸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지금 어디에 위치한 삶을 살던 그곳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삶의 행복한 터전일 것이다.


 오마이 뉴스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의료 현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