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섭 Oct 07. 2023

내가 나를 모를 때가 많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 물음 속에 해답이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요즘은 숙면해야 할 새벽 시간에도 잠에서 깨어나 멍 때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생각이 많은 이유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이라는 추측성 자가 진단을 해본다. 좀 더 명확해진 느낌은 비켜갈 수 없는 늙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주위에 사소한 것까지도 시선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나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주변인관심이 우선시 되는 의식적인 습관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주변의 관심이 평상시 생각 왔던 것에 못 미칠 때 상대에 대한 편견과 분노가 먼저 생겨난다.


요즘은 살면 살수록 인생이 버겁다는 생각을 하고 살게 된다. 살아온 과정의 배경보다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인 듯하다. 때론, 이유를 찾아낼 수 없는 왠지 모를 허한 마음을 막연하게 붙잡고 서 있다.


언제부턴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버려야 할 것과 남아져야  정제력 급격하게 떨어진다. 생각은 여전히 쓸데없는 잡념만 쌓여 갈 때가  많아진다. 생각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을 때 자신에게 괜한 구박과 자책이 주어진다. 때론,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분명 존재하지 않는데 그 무엇인가의 생각이 행동을 붙잡고 있다. 가끔씩 이유 없이 의욕마저도 매몰되어 가는 느낌도 가져온다. 집에 있는 날에는 눕기부터 한다. 눕는 것 이상 편하고 행복한 것이 없다. 집에서의 활동 반경이 단조롭다 보니 하루의 길이가 짧게 끝나버린다.  연초에는 특별하게 세워 놓은 계획도 없다. 무계획에서 계획이 생기면 실행하고자 하는 게으름일 것이다. 도전적인 행동도 차츰 두려움으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마저도 즐겁고 보람 있기보다는 살기 위한 조건이 붙어 있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또래 친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궁금하면서도 굳이 남에 생각까지 들여다볼 여유와 호기심을 느끼지 못한다. 이전의 삶은 혼자 하기에 힘들거나 망설여지는 부분이 생기면 상대와 원만하고 공평한 타협을 이루어 갔다. 지금은 타협자제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워졌다. 아집이 생겨난 것일까, 내 생각의 전부가 옳다는 법전의 원칙 같은 고집을 세워간다.


"남들이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 속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고립의 삶을 살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무엇인가 원인 제공이 있을 법한테 확실한  무엇인가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감성도 무디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지나칠 정도로 한 감성 했는데, 감성이 왠지 호사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짓누르고 있다.


예전처럼 생각을 달리하면 손에 잡힐 것 같은 무엇인가가 있을 법한, 생각만으로 이내 포기하고 마는 나약한 나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나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와 같은 과민한 과정의 생각을 겪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내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잠시 홍역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의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