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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Dec 08. 2023

그릇을 깨고 난 후에

우린 온전한 것들만을 사랑했다

저녁 식사를 끝내싱크대에 가득 설거지는 자연스럽게 아내의 몫이 되어 버렸다. 가끔은 아내의 전유물인 설거지가 남편의 손을 요청했다. 오늘도 설거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싱크대에 눈이 먼저 의식을 한다. 주방은 유일한 여성만을 위한 성지와도 같았던 시대가 있었다. 성지에는 우리 할머니가 머물렀고, 또한 우리 어머니가 대를 이어 머물렀던 고난의 성지였다. 남자가 여성의 성지를 침범하는 일은 성지의 주인이신 할머니가 용서하지 않으셨다.


오늘은 여성의 성지를 엿보았다. 성지의 주인인 할머니가 안 계시기 때문이다. 설거지통에 모양이 각기 다른 그릇이 마치 전쟁의 장병처럼 뒤엉켜 축 늘어져 있다. 구원투수의 심정으로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 따뜻한 손길로 그릇을 감싸 안고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릇을 닦는 순간 손에서 접시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순간,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 바닥 표면으로 접시가 떨어져 내렸다. 접시의 운명은 바닥에 부딪히 소리와 함께 이내 산산조각이  말았다. 설거지 도중 잡념에 의한 손끝의 실수이다. 끝 하나의 실수가 그릇의 운명을 파면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다행히 날카로운 조각은 발밑에 상처를 주지 않고 파편이라는 누명을 벗고 접시의 운명은 가볍게 끝을 내고 말았다.


어떤 것이든 우리의 삶에 영원한 것이 다. 조심하고 살펴 가도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외로 많았다. 결국, 접시만큼은 손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혹시 내 안에 또 다른 무엇인가 타협을 이루어 내지 못한 믿음이 산산조각 난 것은 없을까. 또는 혹시 누군가 나로 인해 믿음이 조각난 채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조각난 접시를 두고 마음의 조각을 찾다가 갑자기 설거지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해 냈다.


설거지는 항상 어머니만의 유일한 전유물과도 같았다.

아궁이가 존재했던 옛날 부엌

어머니의 부엌은 지금과는 달리 방문을 열면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쪽으로 부엌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부엌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어머님만의 유일한 비밀스러운 창고이자 때론 마음과 몸이 함께 쉬어가는 쉼터이기도 했다. 가끔은 부엌에서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어머니의 눈물 사이를 두고 아버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머니의 부엌은 온갖 애환이 곁들여진 어머니의 심장부와도 같은 곳이기도 하다. 부엌의 모든 구조는 쭈그린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해야 가능한 불편한 구조를 가졌다. 부엌에는  개의 아궁이가 나란히 불의 온기를 기다리고 다. 아궁이 위에는 무쇠로 만든 크나큰 가마솥이 걸려 다. 어머니는 수시로 가마솥에 돼지기름을 발라 들 빛나는 솥단지 모습을 만들어 놓으시는 일은 일상과 같았다.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고 불쏘시개를 이용해 불을 지펴 놓으면 뿌연 연기 속으로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익숙한 장작 내음은 우리 어머니 저녁밥 짓는 시간을 알려왔다. 


부엌에는 부뚜막이 다. 부뚜막은 요리하거나, 설거지할 때 올려놓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 전국적으로 상하수도 보급률이 낮아 농촌까지 식수의 편리성을 기대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수도가 없는 농촌은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식수와 함께 설거지물로 썼다. 어머니는 겨울철에도 살얼음이 얼어있는 차디찬 물을 사용하여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설거지하셨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는 것 호사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 시대였다. 때문에, 겨울철만 되면 어머님의 손 상태가 온전할 리가 없다. 손등은 마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을 보는 듯한 허망한 느낌 들어 항상 서러웠다. 


밥상 위에 가끔 밥풀때기 잔재가 묻어 있는 숟가락이 그대로 올라올 때가 있었다. 차디찬 물에 제대로 숟가락이 닦였을 리가 없다.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설거지 상태를 타박한 불효의 마음이 있었다. 부엌 여건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설거지가 완벽할 리 없었던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자식의 부족함이 불효가 된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의 부엌을 생각하면 깊은 후회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마음에 가슴아파진다.


어머니 부엌에 설거지는 어머니 살아 생전 얼마나 큰 고난과 상처가 있었을까, 자식은 이제야 접시 깨지는 소리에 어머니 시린 손끝의 마음을 찾아냈다.


그 정겨운 부엌 풍경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간혹 옛길을 걷다 보면 가마솥에서 풍겨 나는 밥 내음과 구수한 누룽지의 맛은 고샅 가득 퍼져 나가던 그때 그 기억으로 머니 생각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어머니가 돌이 가신 지 겨우 두 달 반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살아 생전 못해 준 것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해 드렸을 것을" 이런 마음이 더 불효의 마음으로 치닫고, 가슴앓이에 상심만 커 가고 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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