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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Nov 22. 2023

옷장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분리수거함에 들어간 옷이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면 환생이라 답해도 될까,

가을이 올 때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끝난듯한 느낌을 항상 가지게 된다. 아마도 여름과 겨울의 기나긴 계절의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때문에 더욱 짧기게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짧다는 이유로 일 년 내내 숨죽이고 있던  대부분의 옷은 바깥세상의 화려한 외출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또다시 옷장에서 긴 잠을 자야 했다. 주인의 무관심보다는 계절의 빠른 탈바꿈이 매번 핑계가 되었다. 결국엔, 주인의 시선이 일부의 옷만을 선택한 차별이 아니기에 주인은 면제부를 씻을 수 있는 무제가 되었다.


사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어도 장롱 속 옷은 주인에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괜한 욕심만을 움켜쥐는 습관을 가져갔다. 욕심으로 인해 옷장 속에서 몇 년 동안 외출의 간택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옷의 슬픈 사연이 옷장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단 가을옷뿐이  아니었다. 매번 계절이 바뀌어가는 길목마다 옷의 사연은 모두가 슬픈 사연을 가져갔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고 입기보다는 때로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기도 했다. 자신의 취향보다는 유행에 떠 밀린 시대적 시선 때문이다. 비싼 옷의 가치는 명품이었다. 내 몸에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아도 명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날개가 되었고 인격이 되었다. 올 겨울에는 또 새로운 옷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년에 입었던 옷이 유행 감각에 무게감을 느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실 없는 보여주기식 얄팍한 변신으로 마음에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든다. 옛것이 좋다는 것 만을 오랫동안 고집해 온 생각은 시대적 착오의 불발탄이 되었다.


예전에 입었던 옷의 일부가 눈의 지루함과 실증의 마음은 단순 변신에 의해 분리수거함으로 보내졌다. 그동안 변심하고자 하는 마음을 여러 차례 시도는 해보았지만 아까운 마음에 일부의 옷을 버린 지 못한 행동을 기억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망설임 끝에 내린 단호함이다. 아끼면 똥이 된다는 말이 결국은 분리수거로 간 옷은 생에 마지막 길이 되었다. 사람의 오만스러움과 간사함이 옷장의 슬픈 사연을 만들어 놓았다. 시간의 노예가 되었던 것일까. 오래된 옷결국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사망했다. 처음 입었을 때의 설렘 그 기억마저 쓰레기가 된 느낌이다.

분리수거함에 들어간 옷이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면 환생이라 답해도 될까,

옷장 속에 옷도 인생을 닮았다.

분리수거함 속에 버려진 영혼의 환생이기보다는, 다음 계절에는 옷장 속에서 새로운 변신과 함께 주인의 선택이 주어질 축복이길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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