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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Dec 31. 2023

아내의 생일 선물로 미역국을 끓였다

시대 흐름에 따라 생일의 의미가 달라져 갔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아내의 생일이 올해 몇 번째 생일인지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태어난 년도를 입력해서 계산힘을 빌려 결국은 알아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계산할 필요도 없이 기억 속에 담겨 있었는데 차츰 기억의  일부가 매몰되어 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영락없는 기억의 쇠퇴기라는 것을 인정한다. 무엇인가를 암기하다가도 되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현실을 또한 지금의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아내는 12월 30일생이다. 아쉽게도 나이를 줄여가야 할 판에 한 살을 더 보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내와 처음 만나 연애를 할 때가 있었다. 풋풋한 20대 갓 넘은 나이었다.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첫아기를 낳고 백일도 안되어 여의도 고수 부지를 갔었다. 사람들은 아내가 애를 안고 있는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너무 앳된 모습이 이유였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오늘 아내의 얼굴을 좀 더 생각 속에 들여다보니 많이 늙어 구나 하는 울컥한 감정이 먼저 앞선다. 광음 여전 [光陰如箭], 화살보다 더 빠른 인생을 읽는 순간이다.


삶을 돌아보 , 어제 돌잔치를 했던 것만 같았던 조카의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어제 중학생인 것 같았던 아들이 내년에 장가를 간다고 한다. 그동안 눈에 가리어진 시간이 있었던 것일까, 눈 깜박할 사이에 세월은 너무 앞서갔다. 며칠 전 뉴스를 보고 다시금 시간이 약속하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것 같았던 유명인추도 14주년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것은 이럴 때에는 참으로 묘한 것이 있다. 남의나이에는 관대하고 자신에 나이에만 지나치게 집착에서 느껴지는 것 일수도 있다.


아내의 생일은 매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실상, 올해는 생일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 게으름 때문인 것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이것저것 챙기는 일들이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생일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옛날 같지가 않다. 젊었을 때는 기념일을 기억해 내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애정이라는 관계를 연관시켜 서운함의 감정을 드러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젊은 날에는 부부간에도 애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유쾌할리가 없다.


글을 쓰다 보니 그동안 잊고 지내왔과거 생일에 관련된 일이 갑자기 생각이 다. 아내와 날마다 통화를 하는 것이 떨어져 있는 동안 의무와도 같았던 시기가 있었다. 7년 동안 기러기 생활할 때의 이야기이다. 나의 생일인 그날도 평상시와 같은 내용으로 통화를 했다. 통화 중에 생일을 먼저 챙겨야 했을 아내는 통화가 끝나기 전까지도 생일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아내가 남편의 생일을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혼자 서운해하는 것보다는 엎드려 절 받는 것이 차라리 낳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을 했다. 아내는 그 말에도 아무런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생일이라는 것까지 밝혔는데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은 것에 서운한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내와 평상시처럼 다시 통화를 했다. 그날도 여전히 어제 생일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 다시 한번 서운한 감정을 짚고 넘어가야 할 생각이 들었다. 어제가 내 생일인 것 알고 있지, 그 말에 아내는 깜짝 놀랐다.


가족이 거주하는 캐나다 집에 베드 버그가 몇 전에 출현을 하여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다. 알고 있는 지인 집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집안 전체를 소독하고 초 긴장 속에 하루하루 심적으로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생일을 기억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전날 전화상으로 말했던 내용조차 몸도 마음도 지쳐 귀에서 놓쳐 버린 상태라 기억을 못 했던 것이다. 아내는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전해 왔다. 지금도 배드 버그 이야기만 나오면  몸이 오싹 해지고 소름이 돕는다고 한다. 그 일이 벌써 1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15년 전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생일뿐 아니라 여러 가지 패턴이 바뀌어 나갔다. 우선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 주고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에게  편하게 해 주자는 주의로 변해 갔다. 기념일이나, 또 다른 기억할 날들은 격식보다는 마음으로 서로의 기념일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 고마움을 느껴 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분별없는 시간은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침대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아내 생일인데 미역국  정도는 끓여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쇠고기 정도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미역국을 끓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그래도 미역국 정도는 끓여주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닥쳐 올 후한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소고기 없이 미역국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에서 일단 시작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 없이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유튜브 검색창에 입력하는 순간, 수십 개의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미역은 다행히 생각에 두었던 장소에 있었다. 잘게 자른 미역 한 스푼의 양이 일 인분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잘게 자른 미역의 양을 다섯 스푼 정도 맞추었다. 5인분이다. 여유 있게 점심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유튜브 영상에서 준비해야 할 재료를 머리에 입력했다. 다짐마늘 한 스푼. 참기름 또는 들기름, 국간장이나 또는 진간장, 마지막으로 멸치 액젓이다. 다른 양념은 주로 쓰이는 재료이기에 대충 어디에 놓여 있는 것까지도 알고 있지만, 진작 있어야 할 액젓을 본 기억이 없다. 결국엔 액젓이 없으면 소고기가 없는 것이랑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냉장고를 뒤져보아도 눈에 들어온 지가 않았다. 양념보관되어 있는 곳에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념보관함 깊숙한 곳까지 낱낱이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그곳에 있었다. 예감이 적중된 것이다


잘게 자른 미역을 소금 반스푼과 함께 물에 15분가량 담가 두었다가 건져내어 손으로 짜내어 물기를 없앤 후, 끓일 냄비에 담아 놓았다. 그 위에 다진 마늘 한 스푼, 액젓 두 스푼, 진간장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을 넣고 볶다가 적당량의 물을 붓고 센 물에서 어느 정도 끓이다가 마지막 중불에서 몇 분  끓여 내는 것으로 미역국이 완성되었다. 미역국의 맛을 보니 다소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맛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것을 끝으로 미역국이 완성되었다. 맛은 손색없이 훌륭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 아내를 위한 요리를 하는 것은 이제 실력이 아니었다. 충분한 유튜브상에 이해력만 있다면 요리전문가 백종원 님의 실력 이상 버금가지 않을까 싶다.


아침이 밝았다. 생일 식탁에는 평상시 먹던  밑반찬으로 토핑 하였다. 아침 식탁에 꽃은 일단, 미역국이다. 식탁에 미역국을 올려놓는 순간, 생일 준비 모든 것을 면피한 듯싶었다. 아내는 기대하지 못했던 행동에 내심 기뻐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생일이 되면 고민을 하게 된다. 무엇을 선물해야 좋아할까 라는 선물이 무거운 생일을 잡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젠 마음의 정성과 애정만큼 필요한 것이 없는 듯싶다. 그리고 가족의 건강함만 있으면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진심이었음을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일 년은 365일이다. 일 년 중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을 꼭 챙겨야 할 겉치레식이 누구에게나 부담일 수도 있다. 그냥 서로가 기억해 주고 또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미역국이라도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이번 여행으로 아내의 생일 이름을 짓을까 한다. 물론 큰 아들이 초대한 여행이니 아들이 차려준 생일 선물 정도로 이름 짓으면 될 것 같다.


저녁 밥상에는 그래도 서운할 것 같아 케이크이라도 하나 준비하고 장미 한 송이라도 식탁 위에 올려놓아야겠다. 이 정도면 생일 준비 완벽한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이 시대순에 따라 생각하는 준비가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사람이면 그런대로 괜찮습니다라는 동조의 답변을 얻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저녁 케이크와 꽃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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