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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Mar 13. 2024

명함의 진심

나는 백수그룹에 문화의원장이 되었다.

한국 생활 22 일째 맞이하고 있다. 아직도 겨울이 차갑기만 하다.


한국에 도착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을 만날 때면 서로를 상징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명함이 없어 상황에 따라 당황해질 때도 있다. 사람을 만날 때 줄곧 줄만한 명함이 없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있었다.


오늘도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일방적인 명함을 받았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명함 없이도 특별히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생각은 실물과 디지털이라는 가상의 차이가 있었다. 명함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있는 신분이라는 배경이 있다.


오늘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첫 대면에 명함 없이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결례가 될 수 있는다는 생각에 미리 명함카드 크기 만한 종이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 준비해 갔다.


오늘 만난 분은 종이에 적힌 명함을 보고 명함 한 장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한다. 명함에 쓰일 직책 중 어떤 직책이 좋을지를 물으셨다. 자신이 원하는 직책 아무거나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한다.


명함에 올릴 타이틀은 W.C.GROUP이다. 일명 백수 그룹이라고 소개하셨다. 시장님은  W.C.GROUP에 의장이다, 의장은 백수와는 관계없이 창업자이자 종신형이라고 한다. 시장재임시절 퇴직 공무원들을 상대로 많은 명함을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 W.C.GROUP에는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분도 있다고 한다. 국방의원장은 김정은과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동급의 직책이 아니겠냐는 말에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의장님은 저에게 문화위원장이라는 직책이 어떻게냐고 제안을 해 오셨다. 주저 없이 "매우 만족스러운 직책입니다.  "덕분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과분한 직책과 명함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퇴직자들에게는 명함이 없다. 그렇다고 며칠 전 나와 같은 방법으로 이름과 연락처만을 종이에 써서 명함을 대신하는 방법은 퇴직 이후 왠지 적응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시장재임시절 퇴직하는 공무원들을 위해 세심한 것까지 배려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이런 국회의원 후보자라면 국회에 입성해서 충분히 국민을 배려하고 국민을 위해 희망을 팔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후 명함이 도착했다. 사람들은 명함을 보고 궁금해했다. 그냥 이름과 연락처만을 기억해 주길 바랐지만, 사람들은 명함을 보고 궁금해했다. 오늘도 지갑 속에 담긴 문화위원장이라는 명함의 부피가 몸값을 한다. 돈 이상의 가치는 꿈의 동반 성장 에너지와 함께 지갑 안에 탑승을 한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사무실에 박카스 두 박스를 가지고 오셨다. "할아버지 연락처라도 주고 가시죠" 뜻밖에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주신다.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가 회사 이름을 대신한 명함 상단 내용이다. 바로 아래 할아버지의 성함과 주소와 집 전화번호와 더불어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명함의 느낌 그대로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가 맞다.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 명함

100세 인생시대, 60세 퇴직 이후, 여전히 삶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실, 개인적으로 명함을 만들어 다니기에 왠지 가치 없는 명함이 될 수도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퇴직 이후 명함 없는 삶을 살아가지만, 나름 개인의 독창적인 명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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