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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ug 05. 2024

쌈으로 변신한 씀바귀를 아시나요

양상추와 씀바귀(고들빼기)가 쌈으로 변신했다.

마트에는 오늘의 특가 세일 상품으로 한팩에 3.98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고추장 주물럭이 올라와 있다. 장바구니에 한팩을 담았다. 먹는 양이 많지 않아 302g 한팩으로 2식 정도는 충분히 소화해 낼 있을 양이다.

마트에서 세일하고 있는 저렴한 가격의 한돈 주물럭

오래된 식생활의  때문일까. 쌈이 없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기는 있지만 불 없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없는 이치와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쌈을 싸 먹을 재료를 사기 위해 야채코너로 갔다.

모듬 쌈과 상추 몸값이 비싸다보 냉장 진열대에 보관되어 신선도를 유지시키고 있다.

모든 쌈과 상추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진열 냉장고에 저장되어 있다. 냉장고 정면에는 100g에 3.48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쌈을 싸 먹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g 정도의 야채를 사야 할 것 같다. 주가 되어야  고기보다 야채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이 좀처럼 납득이 질 않는다. 야채 본래의 가격의 가치를 너머 금값이 되고만 야채를 꼭 사서 먹어야 할지 잠시 고민스럽게 한다. 예전에는 마트에 준비되어 있는 흰 비닐봉지에 상추를 수북이 담아도 1.000원 이내의 가격으로 쌈을 싸서 충분히 먹고도 남아 처치 곤란할 때가 있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야채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몸값만 키워가고 있다.


마트 야채코너 또 다른 진열대에는 다행히 주먹만 한 크기의 양상추가 랩에 포장되어 비교적 싼 가격으로 진열대에 올라와 있다. 이마저도 다 팔리고 잔량이 남아 값싸게 판매를 하는 같아 보였다. 꽁대신 닭이라고  상추 대신 양상추를 쌈으로 먹는 것으로 생각 정리가 되었다.

길옆에 풀숲에서 생식하고 있는 씀바귀

집으로 가는 길 도심 주변아직도 농촌 분위기가 남아있다. 주택가 사이로 논과 밭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도로와 밭이 맞닫는 경계선 주변 노지에는 이름 모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잡채 틈사이로 씀바귀가 고개를 내밀고 정체성을 드러낸다. 길게 뻗은 씀바귀니 줄기 사이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씀바귀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내버려진 잡초에 불과하다. 풀밭에 자라난 잡초는 주인이 따로 없다. 순간, 몇 주 전 캠핑 때에도 풀숲에서 씀바귀 잎을 가져다가 삼겹살에 쌈을 싸서 먹은 맛의 기억이 생각났다. 양배추에 씀바귀를 함께 싸서 먹으면 또 다른 특별한 맛이 날 것 같았다. 씀바귀 대에 돋아나는 새순잎먹을 만큼 뜯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이번에는 씀바귀 정보를 들추어보았다. 씀바귀 종류는 다양했다. 씀바귀 앞에 붙는  수식어도 흥미로웠다. 그중에는 씀바귀 종류에는 고들빼기도 씀바귀과에 포함되어 있었다. 조금 전 노지에서 가져온 것은 씀바귀가 아닌 고들빼기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들빼기는 잎이 톱니모양으로 되어 있고, 씀바귀 잎의 모양은 둥근 형태를 하고 있었다. 뿌리에도 현저하게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고들빼기는 주로 씀바귀로만 알고 있었다.


캐나다에도 씀바귀는 한국과 비슷한 환경에서 서식하고 있다. 특히 공원 잔디밭이나 가정 정원에  많이 서식을 한다. 사실, 집 정원에 씀바귀의 존재는 초대받지 않은 잡초에 불과하다. 정원에 씀바귀를 제거하기 위한 뿌리를 뽑아내는 장비까지 판매를 하고 있다. 토끼풀 또한 서식 조건은 비슷했다. 주택에 살 때 정원에 토끼풀과 씀바귀 제거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던 안 좋은 기억이 남아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잠시 토끼를 키워었다. 토끼는 유난히도 두 가지 풀을  좋아했었다. 고사리 손으로 풀밭에 들어가 풀잎을 뜯어다 주었던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기도하다.


양상추는 상추대신하고 씀바귀는 꺂잎으로 대처를 해서 식탁에 올려졌다.



고들빼기 잎은 금방 뜯어 온 것이라 이것만큼 싱싱한 것이 없다. 고들빼기는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어온 봄나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옛날 봄나물의 명성과는 달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보이는 그야말로 잡초로 불리고 있다. 잡초라고 불러주기 이전에 식물이라는 이름과 또 다른 야생화로 불러 주는 이름에 따라 씀바귀의 삶은 달라져 갔다.


집 뜰에서 환영받지 못한 불청객의 신분으로 찾아와 뽑아버리는 사연과는 달리 지금 야채이라는 이름으로 저녁의 식탁에 올라 고기의 맛에 보탬이 되어 주고있다.


■오마이 뉴스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https://omn.kr/29o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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