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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22. 2024

오늘 냉장고 속을 완전히 비워냈습니다

냉장고는 곳간과 같은 유일한 행복의 저장소이었다

D-1, 쉽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캐나다 출국날이 단 하루만을 남겨 고 있다. 거실. 화장실을 비롯해 침실 구석구석 정리를 끝냈다. 겨우 한 달 반가량 머물던 곳인데 나만이 느껴가는 취가 온방에 가득 묻어있다. 유품 정리는 죽은 이의 감정선이 없다. 다만, 감정의 수위는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 자의 몫이 된다. 자신의 방을 정리하면서 살아 있는 자신의 유품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어줌에 대한 절실한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죽음 이의 감정선까지 넘나들면서 잔흔과 함께 방 정리를 끝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아쉬움을 최대한 눌러보려는 의도된 생각에서 시작된 서글픔의 마음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주방과 냉장고를 비우는 일만 남아있다.


처음 이곳 거주지로 옮겨 왔을 때 제일 먼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냉장안은 텅 빈 채로 냉기만 가득했다. 제일 먼저 냉장고 안을 채워가기 시작했. 냉장고 안이 하나하나 채워져 갔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냉장고 안을 채워갔던 시작의 시간과는 달리 냉장고에 남아 있는 음식물을 비워야 하는 서글픈 과정이 남아 있다.

냉장고 안에는 버려야 할 음식이 별로 없다. 한주 전부터 냉장고 속을 비워 가기 위해 채워가는 것을 중단하고 정리를 하는 일에 집중을 했다. 냉장고 안에 남은 것은 약간의 반찬재료와 거의 다 먹어가는 소량의 양념류와 장류가 전부이다. 남은 것을 음식물 쓰레기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이른 아침 기꺼이 식탁에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음식 재료이다. 남아 있는 음식 재료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정리를 끝냈다. 떠나기 하루 전날부터 주방을 이용하지 않기로 하고 냉장고 정리를 끝내버린 것이다. 나머지 남아 있는 양념류와 음식 재료는 공항 가는 길에 누님댁에 전해주고 가려고 따로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 안에 보관해 놓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방 정리만을 남겨두고 있다. 주방 정리 중 하나가 식기류이다. 작은 냄비 두 개와 프라이팬이 그동안 가장 많은 사용 빈도수가 높았다. 아쉽지만 사용감이 많아 고철로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 이밖에 식기, 수저. 컵. 도마. 가위 칼부터 시작하여 정리를 하려 하니 가짓수가 제법 된다. 그동안 사용한 식기류는 다이소에서 구매해서 사용한 저렴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위생상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을 것 같아 반찬용기만 제외하고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정했다.


평생을 살면서 냉장고 전체를 송두리째  비우는 횟수가 얼마나 될까, 특별히 이사 이외에는 없을 것 같다. 다행히 버릴 것이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음식물을 품고 있던 냉장고에게 덜 미안해도 될 것 같다.


이젠 가져갈 캐리어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캐리어 무게는 23kg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심중 하게 짐을 완성시켰다. 또 하나의 캐리어에는 가져왔던 옷가지를 챙겨놓고 혹시나 미쳐 생각해 내지 못한 필요한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 일부 공간을 비워 두었다.


60대가 되어 한국에 역이민 정착 준비를 하면서 이전에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뜻밖의 것들을 많은 경험하고 또 배우고 간다. 한국에 출국하는 날 그 순간부터 많은 날들을 숨 가쁘게 꿈을 쫓아갔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땐 마치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심정으로 시작하는 날들마다에 설렘이었다. 지금 나는 설레었던 이전의 감정을 떠나 찹찹하게 채워놓았던 냉장고를 비워가고 있다. 지금처럼 냉장고를 비워가듯 그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미련까지도 깔끔하게 비워갈 수 있을까,


내일은 집을 나서기 전에 신발장에 남아 있는 신발을 캐리어에 집어 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방인의 출국준비는 끝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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