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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26. 2024

역이민에 꿈을 접고 캐나다로 돌아갑니다

60대에 도전한 한국으로의 역이민은 나이 때문에 실패를 했다

60대에 도전한 한국으로의 역이민 꿈은 결국 실패라는 결과를 가지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다. 또다시 내 생애에 역이민이라는 재 도전은 없을 것 같다. 취업문화의 엄격한 나이제한 문제 때문이다. 7개월이라는 충분한 시간은 마치 꿈에 무대와 같은 등용문 같은 시간이었다. 많은 시간을 역이민이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희망으로 접근해 보았지만, 60대 나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조건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불발로 끝이 났다. 한번 솔직한 마음의 답을 자신에게 되물어보고 싶었다. "나 자신도 모를 때가 있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꿈이 불발 같은 느낌이라면 내려놓을 법도 한데 왠지  아직까지는 미련이 남는다. 


한국에 머문 기간 동안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과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냉장고를 비우고 집정리를 끝냈, 가져온 짐을 다시 캐리어에 담는 것으로 출발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떠나기 하루전날에는 혼자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먹는 것으로 소박한 한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시간과 이별을 나누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을 떠나기  행보의 전모다.


출국하는  새벽 4시경에 눈을 떴다. 느 때와 다름없이 비슷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오늘따라 몸이 무겁게 저항을 다. 이젠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감이 강하게 작용한 마음의 발란일지도 모른다.

"진정 나에게 어떤 미련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

냉정하게 7개월 동안의 행적을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이라는 곳이 어느 날 그냥 싫다가도 어느 날  조건 없이 그냥 좋아지는 그런 곳, 아마도 전자의 그 느낌이 맞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내가 반평생을 살아왔던 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희망이 아닌 당연한 행동의 마음일 수도 있다. 캐나다로 돌아가면 그동안 한국에서 보내온 불만족했던 시간마저도 미련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다시, 한국에 대한 지독한 미련이 생겨나 방황할지도 모를  두려움 같은 마음 때문이다.


출발하는 아침을 서둘렀다. 어젯밤 캐리어를 차에 미리 실어 놓았다. 떠나는 날에  부산함과 잡념을 없애기 위한 마음의 움직임 때문이다. 옮겨 놓은 짐으로 인해 다소 마음적 여유와 함께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시간을 보니 새벽 5시를 가리킨다. 빠르게 마무리를 짓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방 하나를 가볍게 들고 아침 6시에 오피스텔 현관문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발도 벗지도 않은 채로 거실을 사진에 담고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머물던 이곳 오피스텔은 사연이 있는 곳이다. 이민을 가기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잠시 거주해 있던 곳이 이곳 오피스텔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번에 또다시 이곳에 잠시 머물게 되는 인연을 맞이했다. 결국은 같은 장소에서 번이라는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 도심의 거리가 아직은 조용했다.

설익은 모습으로 아침시간을 열어가고 있다. 본인의 심정이 그대로 그려지는 아침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도심을 곧바로 벗어나 초록 유도선을 따라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였다. 출근 전 시간이라 차량 흐름이 원활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내비게이션 화면에 인천공항 방향으로 도로 상황을 알려왔다. 휴게소 정보도 나와있다. 고속도로 선상에 휴게소를 만나면 간단하게 라면 한 그릇을 먹어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예전 한국 생활을 할 때도 휴게소에 가면 가락국수보다는 라면을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휴게소는 이른 아침 시간이라 대형 화물차 운전자들이 주로 눈에 많이 들어왔다. 패스트푸드 종류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듯했다. 다행히 라면을 주문할 수가 있었다. 주문한 라면이 종이 용기에 담겨 나왔다. 종이 용기는 라면용기만은 아니었다. 반찬을 담은 용기부터 물컵에 젓가락까지 전부 일회용을 사용하고 있었다. 라면에는 단무지가 찰떡궁합인데 단무지 대신 깍두기가 나왔다. 이전에 먹었던 라면에 비해 완성도가 소박하다. 최소한 잘게 썰어 놓은 파와 계란정도는 풀어 넣은 라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라면 이외에는 추가된 어떤 내용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던 라면에 대한 추억이 깨져가는 순간이다. 이제 더는 휴게소에서의 라면 맛을 찾는 미련 없을 것만 같다.

영종도를 잇는 공항대교는 길다는 하나의 특징만으로 환성적이다. 최종 목적지인 공항을 지나쳐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탑승 하루 전에 일정을 안배해 두었던 첫 번째 장소이다. 을왕리는 예전에 가끔씩 바다를 보기 위해 찾아갔던 유일한 곳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옛 추억을 찾아보기로 했다. 주변환경은 새로 짓어진 대형 콘도 이외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해수욕장 도로변에 차를 잠시 주차하고 내리지는 않았다. 눈으로만 잠시 해변을 걸어갔다. 바다는 늘 바라만 보아도 숨통이 트이는 이다. 바다에 가면 항상 내어주는 비밀스러운 그 무엇인가가 있다. 갈 때마다 내어주는 비밀은 달랐다. 오늘 바다는 아무런 비밀도 가져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울림의 느낌도 없었다. 그냥 담담한 심정 전부였다. 아마도 미련을 버리기 위한 바다선물일지도 모른다.


해변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쫓기듯 해변을 빠져나와 누님댁으로 향했다. 집 앞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전혀 없다.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 일이 생겨났다. 누나는 집에 없었다. 매형과 함께 일찍 집을 나서 이미 인천 인근 한의원에 도착해 있었다. 순간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분명 동생이 캐나다로 출국하는 날이라고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만의 생각에 오류가 있었다. 어제저녁 미리 전화 통화를 했었다면 이런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누나집에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난 동생의 불찰이 누나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했다.

누나의 부재로 예상치 못한 시간 공백이 생겨났다. 공항 체크인 시간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누님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의도가 있다. 무의 대교를 건너기 전에 식당가와 카페가 몰려있다.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출입구에 오픈사인이 걸려 있다. 방금 전 오픈한  듯하다. 카페에 첫 손님이 되었다. 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한눈에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이블을 찾아 앉았다. 테이블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있었다. 첫 손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한국의 여행지는 주변 시설이 잘 되어 있어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난 후 더 이상 조건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운 생각과 함께 마음이 무거워져 온다. 두 시간가량을 생각 없이 멍만 때리다가 카페를 빠져나왔다. 카페 주차장 건너편 쪽으로 무의도 대교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무의도 대교 개통 전이라 한 번도 무의도를 가본 적이 없다. 섬이 궁금해왔다. 대교를 무작정 진입을 시도하였다. 섬은 외딴섬의 기능에서 벗어난 새롭게 변신해 있었다. 도로 주변으로 크고 작은 위락시설이 눈을 자극한다. 무의도 역시 눈으로만 담고 빠져나왔다.


최종 목적지인 공항으로 출발했다. 차를 단기주차 발레파킹 하고 짐을 챙겨 출국장으로 향했다. 차의 주인은 아들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해외출장 중에 있다. 출장을 끝내고 차를 찾아가기로 했다. 출국장은 다른 때와 달리 다소 한산한 느낌이 든다. 탑승할 항공사 데스크로 향했다. 다행히 30분 후 크인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공항은 항상 많은 사람으로 붐벼 나는 곳이다. 돌아오고, 떠나는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공항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달고 비행기를 타고 내린다. 그들의 사연은 공항만이 알고 있다.


오늘 인천공항 탑승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한 젊은 친구를 만났다. 군대를 제대하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캐나다에서의 삶이라는 도전 길에 나섰다고 한다. 어떤 동기 부여가 젊은 친구를 움직이게 했는지 자세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이방인이 되기 위한 삶의 예고 전은 젊음이라는 것만으로도 도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한한 잠재 능력으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젊음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그 친구의 모습에서 나의 젊은 날을 잠시 찾아보았다. 가족을 20년 전 유학을 보내고, 그 후 십 년 전 기러기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의 직장을 퇴직하고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이곳 캐나다에 정착했던 젊은 날에 용기를 생각해 보았다. 60대의 도전과는 사뭇 다른 과거이다. 60대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단지 나이 때문인 한국 채용문화의 현실이 용기 있는 행동을 꺾어 버렸다. 이방인도 아닌 내 나라에서  2막의 삶의 시도는 결국 실패의 주원인이 되었음을 늦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탑승을 완료했다. 10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지루할 것 같았던 긴 시간의 비행도 언제부턴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탑승 후 기내 식사가 제공되었다. 식사 후 영화 한 편을 상영하다가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중간에 잠에서 깨어나서 또 다른 영화 상영과 마지막 식사제공 2식이 제공되었다. 오늘 비행도 지루하지 않은 빠른 시간의 흐름을 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아내는 미리부터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 공항에서의 배웅과 마중은 오래된 익숙함이 묻어있다. 공항에서 집으로 향하는 이 길을 수십 번 오고 갔다. 항상 이 길을 오갈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아들 상견례와 어머님의 별세로 한국을 두 번이나 오고 갔다. 그 이외에 해외 여행길까지 합치면 작년 한 해에 이 길을 세 번이나 오고 갔던 길이다. 올초 새로운 희망을 품고 이 길을 떠나갔다. 그리고 7개월 후 희망 없이 돌아와 다시  이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내는 올초 한국에서의 역이민이 마지막이라는 조건부 기회를 주었다. 이젠 더 이상 특별하고도 확신 있는 일이 눈앞에서 생겨나지 않는 한 영원히 한국에서의 삶의 시도는 없을 것이다. 60대의 캐나다 이민자는 다시 한국에서의 역이민이라는 희망을 안고 한국을 찾았다. 쉽게 풀려갈 수 있는 매듭을 잡을 것이라는 희망도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한 타국에서의 노력보다 더 힘들었다. 젊었을 때의 도전 가치는 곧바로 꿈으로 실현되어 간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을 또 한 번 경험을 통해 맞이하게 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맥도널드에 들렸다. 오랜만에 햄버거와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80세 이상 되어 보이는 동양인 할머니가 자신의 자리라고 영어로 말씀하셨다. 할머니를 한인 성당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같은 한국인을 만나도 한국어실종된 채 영어로 변신하는 모국어가 되어갔다. 이제 또 얼마나 자유롭지 않은 영어를 구사하면서 이곳에서 삶을 살아갈지 갑자기 낯선 감정이 생겨난다. 60대의 역이민은 언어에 대한 자유로운 해방과 친숙한 한국 생활문화에 대한 환원이라는 큰 기대감으로 역이민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긴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 든다. 또다시 이런 여행길은 내 생애 없을 것 같다.


역이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재의 글을 마치게 되었다. 60대는 한국에 부탁하고 싶다. 나이보다는 일할 능력을 우선으로 생각할 줄 아는 채용문회 하루빨리 사회 분위기로 흡수되어 가길 절실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끝으로 역이민이 실패로 끝을 내리고 말았지만 희망의 끈을 지속적으로 연결해 주신 분들에게 마지막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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