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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맑음 Jul 28. 2023

주방 창문에서 슬픔 많은 새 엄마를 보았다.

엄마를 향한 시 한 편

엄마를 향한 시 한 편


나의 창

주방 창문 너머 엄마의 모습이 담긴다.
딸 집을 향해 걸어오는 엄마의 걸음 속엔
무거운 인생의 슬픔과 세월이 묻어있다.

얼굴까지 드리워진 그 슬픔 
딸의 눈에 들킬까 등 뒤로 숨기고,  
딸은 그것을 모른 척 엄마를 반긴다.

엄마의 감추어진 그 슬픔
딸이 어찌 모르리.

딸과의 대화 속에 웃으며 꺼내놓는 
그대의 아픈 옛 기억들은

엄마로서 살아내야 했던 
젊은 날의 그대 모습이요
상처로 꽁꽁 여민 
딸의 어린 시절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냈던 엄마와 딸은
그 시절을 잘 살아왔노라
그 시간을 잘 견뎌왔노라
오늘도 서로 위로하며 눈물짓는다.

사람들이 때때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답답함과 고단함을 씻어내듯

엄마는 내가 고단할 때 바라보는 나의 창.
그러니 그 창에 엄마를 드리워 항상 보여주오.

언젠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나의 창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게,
나의 창에 그대를 항상 드리워 주오.

by. 써니 / 21.3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내가 살았던 곳이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사를 계획하다 우연찮게 이 동네로 다시 오게 되었다. 그리 좋지 않았던 25년 전과 달리, 재개발로 신축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동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그때보단 조금 번지르르 해졌달까? 어쨌든 좋아진 동네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동네를 거닐 때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라 한동안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IMF가 찾아왔던 그 당시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고, 가족 모두 힘들었다.


아빠는 다니던 직장을 잃고 해보지도 않았던 택시운전을 하게 되었으며, 그 마저도 술을 마시는 날엔 일을 하지 않으셨다. 한번 술을 마시면 일주일 가까이 정신을 못 차리고 술에 취해 있는 아빠를 보며, 어릴 땐 무섭기도 하고 원망도 많이 했다. 아빠의 이런 가장으로서의 무책임 때문에 집에 쌀이 종종 떨어지는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땐 그 시절 가장 저렴했던 '김치라면'을 사흘 내내 끓여 먹었던 적도 있다. 


이렇다 보니 가정의 생계를 위해, 삼 남매를 어떻게든 키워내기 위해 엄마는 일을 해야 했다. 배운 게 미싱밖에 없었던 엄마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까지 미싱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다니는 직장에서도 월급이 밀려 제때 돈을 받아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난 매번 급식비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방송실에서 급식비 미납자인 내 이름이 불리고,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언제까지 급식비를 낼 수 있는지 취조하는 듯한 모습을 친구들 앞에서 보여야만 했다. 고학년 사춘기가 접어드는 나이에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창피했는지 모른다. 엄마에게 너무 창피하다고 도대체 언제 급식비를 줄 수 있냐고 짜증 부리는 날이면 엄마는 '다음 주엔 꼭 줄게' 하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었다. 


난 하교 후에도 여느 아이처럼 친구들과 놀 수 없었다. 엄마가 일을 가고 없으니 동생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목욕을 씻기고 밥을 먹이며 나보다 6살, 8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친구들과 노는 건 나에게 사치였던 그 시절. 이렇게 힘겹게 살던 나와 엄마가 생각나 가끔은 이 동네 자체가 힘들고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사 후, 3년이 지난 지금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들을 겹겹이 쌓아가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잠시 들른 적이 있다. 주방 창문 너머 힘겹게 딸 집을 향해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좀 전의 힘겨운 얼굴과 달리


 딸! 하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난 모른 척 엄마를 반겼고, 그날 엄마와 지나간 옛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며 울고 웃었다.


엄마가 나를 잘 키워줬기에, 지켜줬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다고. 친구같이 다정하고 친근한 엄마가 있었기에 나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했다. 그러면서 순간 나이 든 엄마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나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때때로 엄마가 어디 아프다는 말을 하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안 그래도 당뇨가 있어 쉽게 피곤함을 느끼는 엄마에게 혹시 합병증이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제발 병원 좀 가라고 병원을 예약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아빠가 엄마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잔소리를 할 때면 대신 화를 내주거나 아빠를 혼내주기도 한다. 그러면 아빠는 왜 또 나만 가지고 그러냐며, 왜 맨날 나만 혼내냐면서 엄마와 나 사이를 시샘한다. 지금은 술, 담배를 끊고 정신 차린 아빠지만 가끔은 앙금이 올라올 때가 있기 때문에 더욱 엄마 대신 화를 낼 때가 많다. 엄마가 어릴 적 나를 지켜줬듯, 지금은 이렇게 나이 든 엄마를 내가 지켜준다.


나에게 엄마는 이런 존재다. 


내가 힘들 때 언제든 엄마를 찾을 수 있게, 엄마가 힘들 언제든 나를 찾을 수 있게.

그럴 때마다 엄마가 찾아와 주방 창에 엄마의 모습이 계속 담겼으면 좋겠다. 

현관문을 열고 "딸!" 하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엄마가 내 곁에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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