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을 꾼다
친정아버님은 TV를 바보상자라고 커가는 우리에게 늘 말하셨다. 나 또한 TV를 아이들에게 멀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TV를 요즘 나는 저녁을 먹고 쉴 때면 보게 되었다. 어제 저녁에 시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같이 드라마를 보고 미국에 사는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내가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길을 재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 되게 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을 음식으로 표현했다. 아빠는 아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엄마는 곁에서 그 길을 잘 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함께 밥을 먹거나 주말을 함께 보내는 꿈같은 현실을 나는 늘 꿈꾸었다. 책을 읽을 때면 아이들과 밥상 토론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꿈같은 현실이었다. 이 꿈같은 현실을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여름휴가로 계획하고 있다. 나는 책장 구석에 있는 보드게임 카드를 좀 찾아봐야겠다. 여름휴가 때 저녁을 먹고 TV를 보거나 핸드폰만 보지 않고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TV속 아이는 to do 리스트를 매일 쓰고 책을 쓰겠다는 목표로 글을 한쪽씩 쓰는 것을 보고 많이 생각하게 했다. 나도 평범한 엄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책을 쓰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용두사미로 용꼬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도 아침에 글을 한쪽 써서 책을 쓰겠다는 목표로 다시 용기를 내서 쓴다. 꿈같은 현실을 상상하고 그 <미래의 나를 구하려 갑시다>라는 책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