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Read between the lines" 도서관에서 바로 희망 도서로 <생활 독서>를 신청하고 남편이 먼저 읽고 이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서로 "행간에 의미를 알아라"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했다. 보는 것이 다가 아닌 그 글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찾으라라고 하는 말이 이제는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겨울이 되니 저녁에 집에 있으면서 조용히 책을 보려고 하면 피곤해지면서 초저녁잠이 몰려온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안 자려고 애를 썼다. 남편은 거실에서 핸드폰이나 TV를 보니 나는 쿠션 의자가 하나 생겨서 저녁에 안방에 눕지만 않게 되어서 좋다. 그렇게 책을 보다 불편해지니 8시쯤에 나는 모든 것을 덮고 잠을 자기로 했다.
잠을 자기보다 '이런 것이 멍 때리는 거구나!' 하며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다. 그렇게 지척거리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매치더니 계속 눈물이 나왔다. 왜, 눈물이 날까? 하면서 혹 남편이 들어올까 하며 눈물을 훔쳤다. 정말 누가 나의 눈물을 훔친 걸까?
유치원에서 특수 아이가 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합교육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자원봉사로 특수 아이를 돌보다가 1년이 다 되어가면 매번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늘 눈물이 났었다.
하지만 이번은 좀 더 슬펐다. 새댁이 시어머니와 시누이 틈에서 내 아이를 돌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를 조카를 사랑해 주기보다 의례적인 교육을 한다는 핑계로 이 아이 저 아이를 돌보라고 했다. 실무원이 연차를 내서 힘든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하지만 점심은 함께 먹지 않아 모르니 기간제 특수선생에게 부탁하고 좀 쉬운 아이와 점심을 먹겠다고 했었다.
그랬더니 그 기간제 선생은 쪼르륵 정직 특수 선생에게 가서 보고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내가 돌보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알았다고 했더니 내가 그렇게 화를 낼 거면 자기가 하겠다고 되려 더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는 것이 인지 상정인데 그런 감정을 보고 성을 낸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고 정직특수 선생이 나를 밖에서 보자고 했다. 특수선생은 누구를 위한 사람일까 자원봉사는 근로자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봉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해달라 부탁한다고 하면서 정작 내가 좀 힘드니 다른 아이를 보겠다는 말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특수 아이들을 수업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말하기 싫어서 알았다고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것이라고 속으로 삭이며 알았다고만 했다. 자원봉사자로 자발성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정직 특수 선생뿐 아니라 원감은 우리가 하는 일이 당연한 듯 따뜻한 말보다 더 지시을 했었다.
이렇게 1년을 보내며 내가 돌보는 ADHD 아이는 학교를 가기 위해 특수 판정 심사에서 일반 아이로 판정받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던 날 오후에 내가 맡은 아이 오후 자원 봉사자는 나를 보며 "선생님 덕분에 그 아이가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아니에요. 내가 해준 것은 없어요" 했다.
예전에 그 아이는 나에게 "죄송합니다" 하고 작게 말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아니야, 네가 잘못한 것은 아니야!" 하며 놀라며 이야기해 줬다. 만들기를 하다가 아이에게 내가 하는 말에 자신이 많이 잘 못한 줄 알고 말해서 나는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는 "선생님! 재미있어요"했다. "선생님에게 인사해야지! 지나가는 어른들이나 선생님에게 인사해야지!" 하며 말해야 인사하는 척하더니 이제는 점심 후에 돌아가는 시니어샘에게 인사를 했다고 칭찬을 들었다.
나는 내가 돌보는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잡기 놀이를 하자고 하면서 내 어깨에 올라타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기뻤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상처받은 마음이 보였다.
차비정도 받는 유급자원봉사로 근로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니 눈물이 더 났는지 계속 슬펐다. 부모님은 유학까지 보내며 나를 크게 키우려고 했는데 내가 이런 곳에서 푸대접받는 내 삶이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주니 더 눈물이 난 것 같다. 그래서 더 내가 하고 싶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나는 어제 글을 쓰면서 춤을 추겠다는 행간의 의미를 몸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