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 것.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를 존중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더 빨 리가라고 남들도 뛰니까 더 뛰라고만 했었다. 그렇게 부모가 처음이라 큰 아이에게 많은 것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멀리 떠나보내기로 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자존감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길 바랐다. 그렇게 캐나다란 곳에서 나는 아이와 잡았던 손을 놓았다.
캐나다에서는 18살이면 부모가 없어도 성인이라고 인정을 해주었다. 그렇게 아들은 18살 성인이 한국에서 고3 여름방학이 지나서였다. 한국에서 고3 동안의 학점에 4~5학점을 더 이수하기 위해 캐나다 고등학교를 거쳐 토익 점수를 통과해 토론토 경제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아들은 언어적으로 힘이 들 수 있으니 수리적으로 할 수 있는 회계를 선택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옷에 몸을 맞춘 것인지 아이는 그 옷을 잘 입고 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아이는 성실하게 해 주어 우리가 했던 걱정과 우려를 없애 주었다.
처음에 남편이 잡아주었던 홈 스테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혼자 하숙하게 했다. 라면과 계란 프라이만 할 줄 아이에게는 엄청난 변화라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듯 아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과 싸우며 부모대신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을 사귀면서 살아냈다.
그렇게 아이는 10년이 지나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라면과 프라이만 할 줄 알았던 나도 결혼하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게 된 것처럼 아들도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음식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작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이 밥이 맛있다고 하면 나는 "사랑"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밥이 아니라 사랑을 만들고 함께 먹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사랑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사랑이었고 그것이 밥이었다.
맛있는 음식도 맛없는 음식도 나에게는 사랑이라는 의미이기에 뭐든 잘 먹었다. 그렇게 우리 아들도 뭐든 잘 먹는 아이로 컸다. 그러던 아이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여러 가족들에게 초대받아 함께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는 함께 못하지만 다른 가족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들은 "우리 가족만큼 하겠어요!" 하는 말에 크리스마스에 다들 가족들은 함께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들은 "저도 부모님이 보고 싶고 외로울 때가 있어요"하는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더욱이 사랑하는 여자친구 가족을 위해 음식을 했는데 잘 안 되어서 자신에게 화가 난다며 풀이 죽어서 전화를 했었다. 나는 아들이 애처로워 그날 잠들기 전에 남편에게 겨울 방학인 2월에 캐나다를 가면 어떨지 비행기표를 알아보자고 했었다. 그리고 아침에 캐나다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안 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가만히 생각하니 아들이 한국에 오는 것이 더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손녀나 손자가 태어나면 그 핑계로 좀 오랫동안 아이와 함께하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요리를 한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고 말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나는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생각하게 했다. 아들은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 자기의 둥지를 만들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좀 더 일찍 떠나보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있어도 항상 마음은 함께하기에 그 온기를 느끼기 위해 함께 밥을 먹고 싶은지 모른다.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 새로운 새해가 돌아오면 다시 함께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밥 한 끼를 또 하고 싶다. 너와 우리는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그 선택은 "잘했고,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