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행
월요일부터 계절학기로 3주 동안 바쁠 테니 일요일은 집에서 좀 쉬고 토요일에는 한라산이라도 갈까 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시쿵둥 하더니 어제 아침에 한라산 가자는 말에 나는 눈도 많이 녹았으니 "다음에 갈까?"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장난스러운 말로 "가기 싫으면 싫다고 하라!"는 말에 나는 "그래!"하고 나도 챙기고 나섰다.
제주에 살고 있는 내가 이틀 방학에 올레길도 걷고, 한라산까지 꼭 제주에 3박 4일 여행을 온 사람 같았다. 하얗게 쌓인 겨울 한라산을 보고 싶었던 나는 또 남편을 설득한 건지, 내가 설득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설산을 다녀왔다.
한라산 설산을 느끼기에는 어리목 코스가 좋다. 그 이유는 완만하게 오르고 나면 확 트인 시야에 펼쳐진 산세를 볼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한두 시간 계속 오르막이라 쉽지는 않았다. 오늘도 아이젠을 싣지 않고 반스 운동화를 싣고 한라산을 올라가는 외국인 아가씨가 있었다. 남자친구는 스포츠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그런지 그래도 잘 걸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신발에 힘을 주고 걸으라고 해도 내가 밑에서 보기에는 반스 신발 자체가 미끄러워 보였다.
오지라퍼인 나는 또 다가가서 아이젠 한쪽을 벗어 신겨주었다. 그리고 같이 따라가려고 했지만 젊은이들이라서 그런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젠을 주면서 빌려준다고는 했는데, 이해를 한 것 같았지만 그 여자 외국인을 가는 동안 찾지는 못했다.
낮까지는 해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흐리고 바람이 불어 구름과 눈바람만 오락가락해서 시야가 뿌였기만 했다. 이래서 설산을 행운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내리고 화창한 날씨가 되면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가면 금상첨화인데 오늘은 그날이 아닌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낮 12시쯤 몇 번은 해가 비며 구름이 한라산을 보여주었다 가렸다 했었다. 커튼을 쳤다가 잠시 커튼을 열었다 닫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목표한 윗세 오름 대피소에 도착하자 남편은 외국 여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대피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외국 여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젠을 돌려주라고 하는 줄 알고 벗으려는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내려가서 주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남자 친구가 와서 고맙다고 했다. 그 친구들은 오스트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도 국제적인 나라가 되어가는 듯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아오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 아이젠을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나누면 찾아가기로 하고 젊은 애들과 헤어졌다. 우리는 김밥을 먹고 내려오는데 나는 그 한 짝 아이젠이 없어서 얼마나 휘청거렸는지 모른다. 방한화가 그래도 잘 안 넘어지는 것 같았지만 계속 내리막이라서 소용없었다. 그래도 스틱 두 개가 있어서 그것을 의지하며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엉금엉금 내려왔다.
그런데 남편이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남편은 멀쩡하게 아이젠 두 쪽을 다 싣고서도 계속 내리막이라 썰매를 타는 게 재미있어 보였다. 더욱이 잘 못 내려가는데 나는 잘 됐다 싶어 '에라 모르겠다'하고 썰매를 타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내가 썰매를 타고 일어서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썰매를 타러 갈 필요가 없겠어요" 하니 모여있던 사람들이 "그러게요"했지만 썰매를 타는 사람은 나와 남편뿐이었다.
예전에 초등 동창들이 겨울 한라산에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다음에 산행을 갔었는데 썰매도 타며 정말 재미있었다던 말이 생각났다. 그것이 이런 건가 하며 나도 깔깔깔 거리며 웃을 정도로 속도감이 있어 재미있었다. 다 내려오니 누가 나무에 토끼와 거북이를 눈으로 붙여 놓았다. '누가 토끼이고, 거북이인지 경주를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난 토끼가 좋아 토끼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토끼는 집에 가면 녹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