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주했던 시간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는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된다. 엄마의 사랑도 자신의 일부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본질이 숨어 있다고는 한다. 이런 고차원적인 것도 모르는 채 나는 엄마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게만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도 크니 그제야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면서 '나는 누구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빈 둥지 증후군을 겪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내가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결핍을 고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이 되어 있었다. 내가 표현을 하지 못한 것처럼 아이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식장에서 이 세상의 주인공은 신부라고 했지만 결혼식장 밖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혼과 함께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혼으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 25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문득 내가 초라해 보였다. 지금까지 나보고 이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렇게 나를 잃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고개를 드니 세상은 나를 빼고 다 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잘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엄마가 어떻게 사랑하고 표현하는지를 아이는 보고 배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동안 결혼과 함께 잠자고 있던 내 자존감과 자신감을 들려다 보면서 많은 시간을 나와 마주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과연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이제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라는 책을 어떻게 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느꼈던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 심리가 조금씩 보였다.
남들이 나를 평가하고 판단했던 잣대는 각자의 기대와 목적이 담겨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도 만족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자존감을 잃고 자신감을 갖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의 문제라는 긍정적인 합리화를 말해줘서 통쾌했다. 그렇게 신뢰하는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요구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긍정적인 관계는 만족과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이 서로 만족하고 즐거워서 다시 만나는 거구나하며 깊게 공감되었다. "관계는 나를 비추는 거울인 만큼 그 시작은 '나'와 마주하는 것이다."라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에서는 말한다. 그동안 나는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나와 마주했던 시간이 중요했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그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와 마주했던 시간을 만든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