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먹자고!
여름 어느 날, 아들과 잡았던 손을 놓았던 곳은 겨울만 되면 눈이 소복이도 많이 쌓이는 캐나다였다. 그렇게 한여름에 헤어졌던 아들은 이번 겨울에는 눈을 뒤로하고 따뜻한 남쪽 제주에 온다. 구정 때쯤에 한 번씩 한파가 올 때가 있다. 예전 겨울에 왔던 아들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제주가 눈 많이 내리는 캐나다만큼 추워서 깜짝 놀랐다고 했었다.
이번 겨울에도 아들은 일주일 휴가로 제주 집에 온다. 아들은 하얀 눈은 볼만큼 보았으니 제주 집에서는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아침에 일어나니 눈보라가 일었다. 아니 이런, 따뜻한 겨울은커녕 겨울 왕국이라니!
어그제까지만 해도 겨울이 다 간 듯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유채꽃, 수선화가 하얀 눈 속에서 빼꼼 얼굴을 비칠 그 꽃들이 눈에 선하다. 따뜻하다가 구정 설 때쯤이면 눈이 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난데없는 한파가 오니 좀 걱정은 된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고 하얀 겨울을 느낄 수 있어서 나는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가 올레길을 걷는 것을 보며 아들도 함께 올레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탐방하듯 걸었는데 시간이 없는 아들과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해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그렇게 함께 파란 하늘과 바다를 걸으려고 했는데, 하얀 눈이 내린 상고대도 보러 한라산도 갈 수 있겠다. 이 눈이 그치고 금방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그때는 파란 하늘과 바다도 보러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오면 무엇을 할지 스케줄을 짜면서 눈이 있는 한라산도 한 번 갈 예정이라고 했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극기 훈련을 시킬 참이냐!"는 말을 했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휴가라 시차가 적응될 때쯤 다시 돌아가는 아들에게 무리하지 않게 하고 싶지만 힘들어도 함께 멋진 곳과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그동안 하지 못한 일상을 하고 싶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이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니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식구고 한 가족이라는 의미가 담아 있어 더 그렇지 않은가 생각되었다. 아침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눈이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가 일어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렘은 눈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게 한다.
그래도 저녁에 비행기가 잘 도착하려면 눈이 적게 와야 할 텐데 말이다. 그래도 작은 아들이 서울에 놀러 가서 형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두 형제는 얼마나 신이 날까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나는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잘 도착하기만 하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