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이 이런 때 하는 말인가 싶다. 이렇게 좋은 일이 있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가 어제같이 느껴진다.
2015년 8월 한여름 캐나다 토론토 시내를 고등학생 아들과 중년의 엄마는 손을 꼭 잡고 새로운 학교를 알아보고 있었다. 꼭 잡은 손은 땀이 날 만도 한데 두 모자는 더 손을 꼭 잡았다. 가족을 떠나 며칠 있으면 엄마와도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둘은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만 나는 애써 더 밝게 웃었다. 하지만 아들은 그것조차도 힘들어 웃는 눈가가 촉촉했다. 그러던 아들이 이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회계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나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목이 멘다. 나와 헤어진 아들은 낮에는 적응하느라 힘들고 저녁이면 엄마가 그리워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들과 공항에서
왜 나는 아들의 손을 놓아야 했을까?
엄마라면 품에서 아이를 내려놓고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직장 때문에 결혼으로 가족을 떠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라고 하지만 아직 학생인 아들이다. 혼자 밥을 해결하고 언어의 장벽도 뚫어야 했다.
처음에는 하숙집을 계약하고 갔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대학생쯤이면 자취도 할 수 있다고 아들을 설득했다. 아이는 엄마 말이면 "팥으로 매주를 만든다"라고 해도 믿을 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들의 손을 놓고 돌아오면서 그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공부만 하게 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12살 5학년 때 제주에서 서울로 유학을 갔었다. 동네 사람이나 친구들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을 아빠가 해낸 것처럼 나도 아들을 멀리 유학을 보냈다. 그때 나는 서울에 우리 집에서 언니, 오빠와 같이 지내며 살림을 해주시는 큰 어머니 덕분에 항상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 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서울에 간 일주일 동안은 엄마가 보고 싶어 혼자 집에 올라오는 계단에 앉아 언니들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우리 아들은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꿋꿋하게 자기의 일을 하나하나씩 해냈다. 그래서 오늘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제는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마트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고 구름 위에 올라선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맙다! 그동안 고생했어. 애썼다. 축하한다!"라는 말에 아들은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그 정도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했다. 이제 힘든 한고비를 넘기니 또 다른 산이 보여 엄마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성취감을 맘껏 즐기고 또 기운을 얻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