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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Jan 15. 2021

독일의 Lockdown, 일상의 적응          

그리고,  여러 가지 상념...


"너는 도대체 하루에 몇 탕을 뛰는 거야?"

예전부터 종종 듣던 말이었다. 하루에 약속이 2,3개 있는 날도 많았고, 밤 12시에 들어와 쓰러져 자는 일이 다반사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생활인 적이 있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가고 싶은 곳이, 먹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한국에 살면 그런 날들이 당연한 일상일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가고 싶은 데가 없어'

작년 가을의 어느 날이던가, 한국 TV 프로그램에서 서울의 밤거리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한 출연자가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도로의 표지판을 보고, 아 좌회전인데... 하면서 직진 차선에 선 자기를 탓하는 혼잣말을 하는 일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방향 표지판, '신촌'

순간, 가슴이 뛰었다. 신촌에 자주 갔었다던가, 신촌을 좋아했다던가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며칠 후, 걸어서 길을 가다가 방향표지판을 만났다.  독일은 도로 위에 표지판이 많이 없는 편이다.  

있어도 길 가에 찻길과 도보길 사이에 세워져 있는데, 시내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고속도로 진입로가 가까운 우리 집 근처는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길을 걷다가 무심히 고개를 들어 노란색 도로 표지판을 올려다보았다.

좌회전, 직진, 우회전... 어디로 간다는 방향들을 보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 데도 가고 싶은 데가 없었다...........



원래도 어두워지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없는 독일.

가로등 불빛조차 어둡고 네온사인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인데, Lockdown으로 더 사람이 없고,  체감상으로 더 캄캄하게 느껴진다.  

저녁 9시 이후가 이동제한인데, 6시면 이미 캄캄해져 개 산책을 시키는 사람만 어쩌다 눈에 뜨인다.

사적인 모임도 제한되어 2집 이상 모이면 안 되는데, 그것도 한 가족에 다른 가족은 한 사람만 더 추가로 만날 수가 있는...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제재가 있는 Lockdown이다.

백화점, 상점들은 다 문을 닫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파는 큰 슈퍼도 식료품 생필품 코너가 아닌, 주방용품 등을 파는 코너는 바리케이드를 쳐놨다. 둘러쳐진 붉은 띠들이 밝은 조명 아래에서도 을씨년스럽다.


처음에는 슈퍼라도 열심히 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마저도 시들해졌다.

집에 있는 시간을 맘껏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나가는 것도 즐기지 않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이 없는 것이, 지금 시국에는 참 다행인 것도 같다. 그 전에는 길에서 보는 독일 사람들이 삼삼오오 웃으며 몰려다니는 걸 보거나, 파티에 가는 듯 손에 케이크이나 와인들을 들고 가는 걸 보면 뭔지 모를 뜬금없는 서운함(?)이 들었는데, 요즘은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애잔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냥 다들 안 됐다는 마음이 든다.

놀거리가 풍성한 것도 아니고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TV 드라마나 예능이 한국처럼 재밌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이고 밥 먹고 오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걸 전혀 못 하고 사니 말이다.

쓸데없는 오지랖이긴 하지만...


눈 온 날.

아이들은 어떻게든 짬 내서 열심히 논다.

마스크 한 눈사람.  눈사람도 마스크를 하게 만드는 코로나...

눈사람도 몰랐을 거다. 자기가 마스크를 하고 서있게 될 날이 올 줄을.


"집에 좀 계세요"라고 하지만...

올해 88세가 되시는 우리 외할머니,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집에 안 계신다.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거리에 사시는 할머니 친구분 집에 가셨단다.

이 친구분은 작년에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퇴원을 하셨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 할머니와 통화를 하시면서 다들 자기를 버렸다고 우셨단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 방문이 금지되었던 중이니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할머니는 내내 마음이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집으로 오시고, 엄마 눈치를 며칠 보시더니 엄마가 병원 예약이 있어 나가시던 날 바삐 외출 준비를 하시고 "나도 나갔다 올게" 하며 휭 사라지셨단다. 엄마가 뭐라 말할 틈도 안 주고.

그렇게 물꼬를 튼 이후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셔서 저녁까지 드시고 오신단다. 어쩌다 집에 계신다고 하셔서 통화를 할 때 내가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고 하면,  " 응, 조심하고 있어. 맨날 집에서만 만나" 하신다.

그 집이 그 집이란 말은 아닐 텐데.

폭설로 3일을 집에 계시던 날은 하루 종일 누워서 끙끙 앓는 소리를 하시더란다. 그리고 날이 풀리자마자 또 휭 하니 사라지셨단다.

88세의 나이에도 그렇게 다니실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이해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할머니는 이제 친구가 많이 없으시다. 친한 친구들을 먼저 많이 보내셨다. 그래선가 아직 만나시는 친구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한 독일 할아버지는 코로나로 인해 내가 자주 찾아뵙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어차피 죽을 건데 늙어서 죽나 코로나로 죽나 무슨 상관이겠어. 늙은이는 오늘의 시간을 내일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거야. 다 순리인 거지. 난 그냥 오늘을 살래"

그리고는 열심히 외출을 하시는(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아니었고, 아들 집 방문 할머니 묘소 청소 같은 평소의 일상들) 매일매일을 사셨다.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텅 빈 집에서 아무도 오는 사람 없이 매일을 혼자 있는 일이 코로나의 두려움보다 덜 한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지난날의 나는 할머니를 닮았나 보다.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입장을 바꿔 내가 지금 할머니라고 해도 하루 종일 TV만 보는 매일매일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래도 통화할 때는 집에 좀 계시라고 잔소리를 드린다. 어쩐지 손녀로서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Lockdown

적응이 되어 가고 있다. 매일 바삐 돌아다니던 나는 집에서의 시간도 바쁘다. 눈 깜짝하고 보면 또 잘 시간이다.

삼시 세 끼의 생활도 감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래도 네 가족이 함께 집에서 복작거리기에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혼자 견디는 시간이 아닌, 매일매일 할 일들에 치이는 시간들이라는 것이 문득 감사하다.


집에서도 '요리사'

집에서 매일 하는 음식들이 엄청나다.

지금은 먹는 것 말고는 '새로운' 즐길거리가 없는 것 같다.

운동하고 몸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서 같은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을 싫어하는

작은 아들... 같은 음식이라도 플레이트를 다르게 해 가며 삼시 세 끼를 챙겨줘야 한다.

먹는 걸 워낙에 좋아하는 큰 아들은 늦게 일어나도 한 끼를 건너뛰질 않는다. 세끼를 꼭 먹어야 한단다.

집에서도 매일 자전거를 타며 하루 2000칼로리는 너끈히 소모하는 남편은 음식의 양으로 승부한다.

내가 집에서 요리를 안 할 수가 없는 이런 상황에... 이왕 할 거 즐기자! 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메뉴 고갈이 심각했었으나, 요즘은 나름대로 변형과 실험을 해가며 즐기려고 한다.


독일의 비대면 일상

병원 진료도 영상진료가 생겼다. 보험도 전화로 들면 서류를 보내준다. 부동산도 집 둘러보기를 영상으로 해준다. 쇼핑도 영상으로 숍을 비디오를 보여주고 고른 물건을 집으로 보내준다.

길거리에서는 분홍색의 lieferando(배달의 민족같은)음식 배달 박스를 매고 자전거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유명한 수제 햄버거집 앞에는 이 배달원들이 줄지어 기다려 음식을 받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배달이 없던 슈퍼에서도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dm(Drogerie)은  온라인 구입 후 배달도 해주지만,

전날 온라인 주문을 하면 다음날 매장에서 찾아갈 수 있게 담아둬 주는 서비스도 있다.

이전의 독일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 불과 1년 만에 속속 일어나고 있다.  

계기는 씁쓸하지만, 편리한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는 건 사실인 듯하다.


오늘은 감자요리 레시피

작은 아드님이 수프를 드시고 싶으시다고 하여

감자수프를 끓였다. 15분 정도 걸린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국 음식들에 비하면 독일 음식들은

후다닥 하는 느낌이다. 오븐에 들어가 익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준비하는 시간은 짧은 편이다.

감자수프

감자 껍질을 벗겨 작게 썰고, 양파도 껍질을 까서 잘게 썬다.

잠길만큼의 물과 소금을 적당량 넣고 폭폭 끓인다.

치킨스톡이나 스톡류로 나머지 간을 맞춘다.

도깨비방망이로 갈아준다.

너무 되면 물을 더 넣어 조절하고, 질면 옥수수 전분을 넣어주면 좋다(찹쌀가루 풀 듯, 찬물에서 풀어서 끓고 있는 수프에 넣어주고 잘 젓는다)생크림이나 우유를 위에 살짝 뿌려 젓가락으로 휘 그어주면 멋스럽다.

파슬리가루도 뿌려준다.

옥수수 전분


지감자

오븐을 200도로 예열하고, 감자는 씻어서 물기를 잘 닦고

껍질채 6, 8등분으로 길게 썰어준다.

소금, 올리브 오일을 골고루 발라준다.

20분 정도 오븐에서 굽는다.

감자용 허브 조미 소금을 조금 섞어줘도 좋다.

감자요리용 허브조미소금


올리브 오일은 엑스트라 버진을 가열용으로 쓰면 안 된다.

엑스트라 버진은 불이 가해지지 않는 차가운 요리, 샐러드 같은 용으로 써야 하고,

오븐용이나 볶음용이 가능한 것으로 쓴다.

보통 Cucina라고 쓰인 것이 가열 요리용이다.

앞쪽에 220도까지 가열이 가능하다고 쓰여있다.  튀김요리도 사용 가능하다.

(예전크로아티아에 갔을 때, 크로아티아에서는 식용유를 올리브 오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슈퍼마다 가득 진열된 가열용 올리브 오일이 식용유처럼 저렴했던 기억이 난다.)


긴긴 겨울밤에...

야식이 생각나도 '직접'해 먹어야 하기에.

남은 감자로 해먹을 거리를 고심해본다.

얼마 전 지인이 먹는다던 '감자전'에  순간 침이 고인다.

그래, 야식은 감자전! 당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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