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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Nov 05. 2020

융이라고 불립니다

이름에 관하여...

"Frau Jung" (융 씨)

어딘가에 내 이름이 쓰인 것을 보고 나를 불러야 할 때, 특히 병원 같은 곳에서 나는 종종 이렇게 불린다.

독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보통 성을 부른다.  

여자는 Frau, 남자는 Herr를 성 앞에 붙여서 부른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ㅇㅇ씨'의 호칭에다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붙이는 셈이다.

내 이름은 Jung  Kim 이기 때문에 사실은 'Frau Kim'이라고 불러야 맞다.

(독일은 이름이 앞, 성이 뒤에 붙는다. 혹시나 성을 앞에 붙이고 싶을 때는

', '를 붙이면 된다.  Kim, Jung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주 나를 'Jung'이라는 이름을 성처럼 부르는 건,

독일 이름에는 Jung이라는 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젓이 이름 자리에 쓰여있는 'Jung'을 자연스럽게 성처럼 부르는 이유는,  

그 옆에 쓰인 'Kim'때문이다. 독일에서는 Kim이 성이 아닌 이름이다.

그러니까 내 이름은 독일 사람들의 이름 중, 성과 이름이 서로 뒤바뀐 이름인 셈이다.

'Kim과 'Jung'이 결코 낯선 이름은 아니기에, 그래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융 씨라고 부르는 게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전에 대학 전공수업을 듣다 보면, 종종 '융'이라는 학자가 나왔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다.

나는 그때는 융이 'Jung'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독일에 와서 보니, 초성의  'J'는 '이응'으로 발음했다.  

그리고 독일어의 'Jung'은 '젊은'이라는 뜻이 있다.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나는 종종

"Ich bin immer Jung,  weil ich Jung bin"  ㅡ "나는 늘 젊어요. 왜냐하면 나는 융이니까요"

라고 소개를 하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웃었고, 내 이름을 바로 기억해주곤 했다.

친한 친구들도 당연히 융이라고 부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내 이름을  기억해주며 말한다.

"융, 너는 여전히 융이구나(젊구나)"하고 웃는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지나도, 늙어도 여기서는 언제나 젊은 '융'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동료 엘리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고등학생 남자애 말이야, 걔도 이름에 Kim이 있더라? 걔도 너랑 같은 이름인 거야?"

우리 학교는 국제학교인데, 한국 아이들이 몇 명 있다.  학교 아이들이 급식을 먹을 때면, 각자 자기의 칩을 스캔해야 하는데, 그러면 이름이 뜬다. 그 이름을 보고 엘리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아하, 이 시점에서 엘리가 궁금해하는 포인트는 이거다.

우리나라에서 김이나 박, 이 씨의 '성'이 많은 것처럼 독일은 같은 '이름'이 많다.

그래서 한 학교에 파울, 루카스, 안나, 마리아 등이 여럿 있다.

선물가게에 가면, 이름이 박힌 컵이나 목걸이, 열쇠고리가 진열되어 있는 걸 종종 본다.

이름을 듣고 새겨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장에서부터 이름이 찍혀서 나오는 거다.

처음에는 이것이 의아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 이름의 사람들이 많으니 당연히 수요가 충당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신문의 설문조사.  조사 그룹 내 같은 이름 수

엘리에게는 이것이 궁금했던 거다. 내 이름은 잘 알고 있으니,  Kim이 성인 걸 알겠는데 왜 이렇게 Kim이 많은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성이 많다고 설명을 해주니, 그러면 다 같은 친척이냐고 물었다.

그 옛날 조상 누군가부터는 친척이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지금 다 친척은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엘리는 말이 난 김에 묻는다며, 그럼 한국 애들이 너를 부를 때 융이 아니라 다르게 부르던데 그 이름은 뭐냐고 묻는다. 한국 아이들이니, 당연히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선생님'(학교에서 일을 하니까) 혹은 '이모'(외국살이에서 한국사람들끼리는 다 이모고 삼촌이다)라고 부른다.

엘리에게 그 이유들을 설명해주자, 엘리는 "아, 흥미롭다. 우리는 다 ㅇㅇ 씨, 이렇게 부르는데"

그리고 우리는 지나가는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는 아니지만 다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설명하니-독일은 자기 할머니만 할머니, 다른 집 할머니는 다 ㅇㅇ씨라고 부른다- 또 흥미로워했다.

독일은 학교 선생님도 Frau 누구 씨 Herr 누구 씨라고 부른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이모 고모 숙모  = Tante (탄테)   삼촌 외삼촌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 Onkel(옹켈)

우리는 이렇게 여러 개의 호칭으로 따로 구분해서 불러야 하는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에게는 한 단어다.

아줌마 아저씨도 독일어 번역은 Tante, Onkel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독일식으로는 다 친척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부르는 셈이다.

이런 설명들에 엘리는 "오오... 한국은 너무 가족적이야!" 하며 감탄을 한다.

생각지도 못 한 표현에 웃음이 터졌다. 독일과는 다른 호칭으로 인해 순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가족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엘리의 표현이, 우스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누구누구 씨.라고 불리는 건 상상이 안 된다.)

문화의 차이는 이렇듯 아직도 생활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독일생활 20년차인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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