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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Nov 05. 2020

학교 주방으로 출근하는 날의 일상

ㅡ 오늘의 메뉴는?

어제저녁부터 간간히 내리던 비가 제법 굵어지던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니, 엘리가 창문 앞의 레몬 상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융, 오늘 아침에 식재료 배달이 왔는데, 주문했던 오이는 안 오고 레몬이 왔어.

저것 좀 봐. 저 많은 레몬을 도대체 어디에 쓸 거야? 

이미 배달된 거라고, 그냥 줬어.  계산서에서는 빼줬고.

너 필요하면, 집에 가져갈래?"

보통의 식당이라면 샐러드드레싱이라든지 들어갈 데가 많은 레몬이지만,

우리는 국제학교,  우리 어린이들은 샐러드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샐러드도 사이드 메뉴로 자주 나오긴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요구르트 드레싱이 대세다.

발사믹 드레싱, 과일 드레싱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으나,  거의 전원이 요구르트 드레싱만 선택했다.

그 후로 엘리와 나는 다른 드레싱을 안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레몬을 따로 주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레몬이 필요한 일은, 물에 레몬을 띄우는 정도?

"와, 신난다. 내가 한 반 정도는 가져갈 수 있어. 반은 부지런히 물통에 넣자"

안 그래도 키토 다이어트를 한다고 샐러드에 레몬즙을 짜넣은 남편이 매번 장 볼 때마다 한 망씩 사 오는데 공짜로 이렇게 많은 레몬이 생기다니... 게다가 학교 식재료는 모두 유기농이다. 

갑자기 신이 났다.

(안 그래도 넓은 이마가 자꾸 더 넓어지는데, 이렇게 공짜를 좋아하면 안 되는데...)

공짜 레몬으로 인해 주말을 끝내고 출근한 월요일의 피곤함이 급히 사라졌다.

물병 하나에 레몬 한 개를 통째로 썰어서 넣었다. 1개에 1유로(1300원) 정도 하는 유기농 레몬을 아낌없이 숭숭 썰어서 넣으니, 왠지 부자가 된 거 같은 마음에 흡족해진다. 

참, 사람의 마음이란... 사소한 일 하나로 하루를 여는 아침에 넉넉함이 깃든다.


오늘의 메뉴

Kaiseschmarrn과 Apfelmuss 

* 카이저 슈만

카이저(Kaiser)는 '왕' 슈만(Schmarrn)은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이라는 뜻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카이저 슈만을 찾아보면 몇 가지 설이 나온다.

하지만, 무엇이든 첫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는 법.

예전에 카이저슈만을 처음 만들었을 때, 독일 셰프가 들려준 이야기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셉의 요리사가 왕에게 드릴 팬케이크를 만들다가 망쳤다.

요리사가 임기응변으로 망친 팬케이크에 설탕을 뿌려서 새로운 요리라고 올렸는데 왕이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 황제의 말도 안 되는 소리 '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이름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이 황제가 사냥을 갔다가 궂은 날씨를 피해 들어간 농가에서 처음 대접받았다는 설,

왕실의 요리사가 황제에게 드릴 팬케이크를 만들다 찢어지고 두껍게 구워져 주방 사람들끼리 

나눠 먹었다는 설,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요리사가 바친 이 디저트를 안 먹자 황제가 아내의 몫까지 다 먹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아무래도 처음의 이야기가 가장 드라마틱하고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이 엉망인 모양을 보면, 정말 팬케익을 만들다가 망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카이저 슈만 만드는 법

1.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각각 거품기로 저어준다.

    흰자는 거품을 많이 올려준다. 

2.  우유, 밀가루, 설탕, 소금약간을 넣고 섞어주고 계란 노른자, 흰자 거품 순으로 넣어 골고루 섞어준다.

3.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반죽을 넣어 도톰하게 약한 불로 굽는다

4.  팬케익을 잘게  찢어준다.

5.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린다.


그리고 Apfelmuss (사과 무스)를 곁들여 먹는다.


* Apfelmuss 사과 무스 만드는 법

1. 사과는 껍질을 벗겨 4등분으로 썰어 씨를 빼내고 작게 썬다.

2. 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레몬즙 약간과 설탕 약간, 사과를 함께 찌듯이 끓인다.

3. 믹서에 간다.

4. 차게 식여서 카이저 슈만과 함께 곁들여 낸다.


오늘의 메뉴에 카이저 슈만이 있는 것을 본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맛있는 것을 받으며 좋아서 동동 뛰기까지 하는 아이들을 보는 나도 행복한 웃음이 전염된다.

그렇다면,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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