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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0. 2020

나는 오늘도 아이폰을 째려본다.

워킹맘에게 휴대폰이란?

 맨주먹 꽉 쥐고 태어난 인간이, 일평생을 꼬옥 쥐고 살게 되는 이것.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자 21세기 필수품인 휴대폰.



 워킹맘에게 이 휴대폰이란 정말 애증의 관계다.


 나는 태생이 휴대폰을 사랑했다.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휴대폰이 나왔을 때 (라떼는 말야를 이렇게 시전 할 줄이야) 집 전화로 걸려오던 친구들의 전화가 내 개인 전화로 오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친구들과 수다 떨 때도, 연애할 때도 휴대폰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휴대폰과  복잡 미묘한 관계가 되었다.   


 일단, 프리랜서인 나에게 새로운 일자리 소식을 알려주는 건 언제나 휴대폰 녀석이었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 휴대폰은 더 바빴고 중요해졌다. 온갖 장소 섭외와 전문가 섭외, 연예인 섭외 등이 개인 휴대폰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급 출연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서 부랴부랴 버스에서 내려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의 놀이터에서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던 때도 수두룩했고, 오래간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전화기에 선배 이름이 떠 중간에 뛰쳐나가 전화통화를 하다가 다시 영화를 보러 들어간 적은 수두룩 플러스 빽빽이라는 건 방송작가들의 고정 레퍼토리다.

 큰 맘먹고 피트니스센터에서 개인 PT를 받다가 일 때문에 전화통화를 급하게 하느라 PT쌤의 휴식시간만 점점 늘어나던 그때, 나의 근력 향상이 1도 없는데 자꾸 회원권 재연장 권유하던 PT쌤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하게 될 때마다 휴대폰을 째려보며


“어휴 너 진~짜 질린다!”


 다시는 쳐다도 안 볼 것처럼 내던져 버렸다가도, 바로 그날 밤 고민상담을 빌미로 친한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밤새 휴대폰을 붙잡고 울고짜고 했던건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러니다.       

 

 애증의 휴대폰이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한다. 만약 휴대폰이 없었다면 아마 난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했을 수도 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들쭉날쭉 일을 해대는 나 같은 유형과 누가 제대로 연애하고 결혼 결심까지 하겠냐고... 나라면 진짜 나랑 결혼 안 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했다.


 나 때문에 매일 밤 휴대폰으로 두 시간씩 전화 통화하더니 얼마 안 있어 결혼하잔다. 연예인들 전화 섭외하고 전화 인터뷰하던 가락을 발휘해 그렇게 난 결혼을 하게 되었다.


휴대폰, 너 징글징글 질렸었는데... 크게 [한 껀] 한 거 인정.


이렇게 나와 동업자적인 관계로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휴대폰이었는데. 그런데....

아이를 낳고 일터에 복귀하자마자 깨달았다. 핸드폰은 나에게 [대략난감 골칫덩어리]가 되었다는 걸.   


 출산 후 100일 후에 일을 시작한 나는, 아이를 봐주시고 계시는 양가 어머님들을 빨리 귀가시켜 드리고자 (시어머니는 월 수 금을 도곡동에서, 친정엄마는 화 목을 수원에서 우리 집 마포까지 왔다 가시는 그야말로 멀미 나는 상황)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향하곤 했는데,  퇴근 후 [일적인 전화]가 오면 왜 그렇게 아기가 울어대는지...

 

 하아. 처음엔 이 무슨 머피의 법칙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했는데, 아니다, 그냥 이건 생명의 법칙이었다. 아기는 대부분 계속 울었다. 아기가 방실방실 웃는 건 자신이 방치되어 있지 않고 엄마가 자기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기 때문이다. 자기를 홀로 눕혀놓고 멀찍이 떨어져서는 까맣고 네모난 물건을 얼굴에 바짝 대고 뭐라 뭐라 속삭이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너무 못마땅한 아기는 제발 전화 좀 끊으란 듯이 빽- 울어대는 거다.


 난 정말 이 상황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기를 돌봐야 하는 것도 힘들긴 하지만, 그건 내가 체력관리 잘 하고 모드 전환만 잘하면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 일을 할 때 또 다른 한 가지가 불쑥 끼어드는 상황이 오면 정말 그때는 워킹맘으로서의 비애가 소나기급, 아니 폭우급으로 차오른다.  


 육아에 몰입하고 있을 때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데 아이 관련 급한 소식이 날아와 처리해야 할 때. 워킹맘들이 가장 힘든 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어떤 직업인이 일적인 통화를 하면서 아기 울음소리나 칭얼거림을 BGM으로 깔고 싶을까. 난 정말 싫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퇴근길 집 근처, 우리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계신 시어머니께 [곧 도착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현관문 열기 직전 회사에서 걸려온 급한 전화 한 통. 약간 고민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받았는데 통화가 좀 길어져서 십여분 넘게 하게 되었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통화를 하다가 들어갔는데, 어머님께서 물으셨다.  [곧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었냐]. 계획했던 차 시간을 놓치신 듯했다. 이미 가방을 다 메고 계셨다.

“문 앞에서 전화가 와서 받고 들어오느라 늦었어요. 죄송해요.” 솔직히 말씀 드렸는데 “집에 들어와서 받으면 되지!”라고 하시는 거다.

평소 같았으면 [네] 하면 될 일인데, 나도 하소연하고 싶었는지 “아이 있는데서 일 전화하기 힘들어요. 옆에서 엄청 시끄럽게 굴고 통제가 안돼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래? 나 전화할 땐 가만히 있던데?” 이 말씀을 하시며 서둘러 나가셨는데 그날은 나도 마음이 좀 안 좋았다.

 한동안 곰곰이 곱씹어보다가 아이한테 말해주었다. “은우야, 할머니 전화 통화하실 때 조용히 해줘서 고마워! 앞으로 엄마가 전화할 때도 조용히 해줘! 알았지?”라고...


 그 뒤로 얼마간은 퇴근 후 집 주차장에 도착해서 운전대에 앉아 삼십 분 정도 전화업무를 보고 들어가곤 했다. 더불어 사적인 전화통화들도 꼭 했다.  


 애 낳더니 전화 한번 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 된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서 베프들과도 연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난 이제 남 연애에 관심이 좀 시들해졌지만, 아직 싱글인 베프의 연애 흐름은 쫒아가고 싶었다. 그들의 중요한 순간에 줄거리 다시듣기 없이 축하 또는 위로를 해주고 싶었기때문이다.

 하지만 내 결심과 노력에 비해 그들이 느낀 건 미비할 것이다. 결국은 늘 시간에 쫓겨 서둘러 귀가를 해야만 했으니까.

 

 주차장 전화업무 후 퇴근할 때 어머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일과 양육을 조화롭게 병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렇게 워킹맘으로 산지 4년. 아이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다. 이제 말도 제법 잘 통하고 눈치도 상위권이라 엄마가 간단한 전화통화 정도는 할 수 있게 배려해주기 시작했다.

 엊그제 퇴근해서 아이와 즐겁게 놀고 있는데 눈치가 하위권인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짜증 난다는 듯 아이폰을 째려봤는데, 아이가 [엄마, 받고 와]라고 하는 게 아니겠나. 어머어머어머 그때 나 좀 울 뻔했다. 기특한 내시키.


 내 방에 들어가 전화통화를 한참 하고 나왔는데 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어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하지만 빨리 끝내주세요]


아 진짜. 엄마도 사랑해.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내 맘대로 전화통화 편히 할 날이 올 것 같다.

그땐 진짜 나 좀 울어도 되겠지?


빨리 끝낼순 없지만 엄마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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