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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8. 2020

내가 감당한 냄새의 변천사

아기의 냄새들에 관한 고찰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똥머리 한 채 나타난 친구에게 “요거시 바로 황금똥 머리네” 라는 실없는 농담을 내뱉으며 킬킬거리기나 했던 내가 ‘리얼 황금똥’을 찾아 헤매게 된 건 엄마가 되고 부터다.   


울 아이 신생아 시절 황금똥베베 만들어주겠다고 뉴질랜드산 방목분유에 유산균까지 타 넣고 젖병을 흔들어대면서 “울 애기 황금똥 싸게 해주세요. 1일 1똥 싸게 해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까지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아기엄마들이 그런다. ‘애기 응가냄새는 신기하게 하나도 안나!’ 과연 그럴까?

신기할 것 없다. 사실은 냄새 나니까.


[똥냄새 안나] 는 [똥냄새도 싫지 않아] 와 같은 말이라는 것쯤은 이해해 주셔야한다. 내 아이가 예쁘니까 똥도 예뻐 보이고 향기로워 보이는 그런 심리인데, 실제로 향기로울 리는 없다.  

날로 업그레이드되어 출시되는 기저귀냄새방지 휴지통들이 이를 증명한다.


분수토 냄새는 어떻고.

분수토란, 분수처럼 토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갓난아이들이 이렇게 토할 때가 많다. 신생아기들은 분유를 먹고 반드시! 트름을 잘 시켜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껏 잘 먹은 분유를 콸콸콸 죄다 토하면 그것처럼 속상한 게 없다. 분수토를 하고 나면 아기의 배냇저고리와 담요 위를 흥건하게 만들어 흡사 '막걸리토' 같은 비주얼과 냄새를 유발한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우리아들.

내가 요즘 감당하고 있는 냄새는 ‘쉰내’다.

분명 어린이 집 다녀와서 저녁 먹기 전에 할머니들과 목욕을 하는데도, 내가 퇴근하고 올 때쯤이면 다시 땀내가 누적된 쉰내를 폴폴 풍기며 내 품에 안긴다.


땀이 데워졌다 식었다를 몇 번 반복해야 이런 쉰내가 날까... 하며 코를 킁킁거려봤는데, 쉰내만 나는 게 아니다. 아련하게 ‘단내’도 난다.

노느라 이마에 목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난 채로 시원 달큰한 간식들을 (흘려가며 다시 주워가며) 먹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결국 그냥 웃음만 난다.

그리고 기특해진다.


그래, 너도 오늘 땀나게 열심히 살아냈구나!  


난 이렇게 우리 아이의 다양한 냄새를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는 반면

내 아이는 나에게 한결같이 말해준다.


엄마 냄새 너무 좋아!


아직까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이는, 당연히 엄마 냄새도 너무 좋은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과 이성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아이의 지금이 애틋하다.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냄새로 기억해주는 아이가 고맙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면서도 [사람냄새 난다]는 수식어를 달기가 몹시 어려운 세상이다. 뒤가 ‘구리고’ ‘악취나는’ 사람들이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어쩌면 나 역시 하루하루 다른 냄새를 풍겨가며 살아왔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리아이는 나로부터 [좋은냄새] 를 맡아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뜨끔해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엄마가 오늘 많이 짜증내고 힘들어서 좋은냄새 안났을거야. 하지만 내일은 좀 더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볼게.


앞으로 난 또 어떤 냄새들을 맡게 될까.

이 아이가 커가며 [초딩 형아 냄새], [사춘기 소년 냄새], 훌쩍 커버린 [으른 남자 냄새]를 풍겨댈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의 정수리 냄새도 향기롭다며 우리 부부를 떠나갈 것이다.

내 아들은 다시금 저 닮은 아기의 황금똥 냄새를 맡으며 물개박수 치고 있겠지!

나역시 내 아이의 아기의 황금똥 냄새를 맡으며 물개박수치고 있겠..... 아니다, 그땐 황혼육아 이런거 없을거야, 엄만 꽃향기맡으러 꽃놀이 단풍놀이 다닐게! ㅋㅋ (이런 날 오겠죠?)


뭐가 되었든, 우리 모두 그 때까지 열심히 살아보자.

열심히 살아낼 때 나는 [건강하고 정직한 냄새] 폴폴 풍겨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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