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배설해야할 또 다른 하나, 눈물에 관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혼자 살겠다고 독립했을 때, 제일 좋았던 건 아무도 없는 내 집에서 마음껏 전화통화를(남자들에게도!) 큰 소리로 할 수 있다는 거였다.
두 번째로 좋았던 건 [가족들 눈치 안보고 엉엉 소리 내서 울 수 있단 것] 이었고.
부모님과 살 땐, 아무리 내 방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웅크려도 저 두 가지를 은밀하게 진행하려면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에, 드디어! 혼자 살면서는 작정하고 마음껏 누렸다.
특히 종교가 기독교인 나는 가끔 크게 소리 내서 기도하며 엉엉 울기도 하며 그렇게 내 집의 고요를 아무렇지 않게 파괴해대곤 했다. 분위기를 깨뜨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게 너무 편했다. 크~ 그래, 이 맛에 독립하는 거지!
결혼하고 나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출퇴근 시간 패턴이 서로 달라서 집에 나 혼자 있는 시간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원하면 얼마든지 수도꼭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아, 정말 이쯤에서 나오는 ‘그런데’의 향연. 워킹맘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난 진정한 ‘그런데’ 의 쓸모를 체감하게 되었다지.)
아이를 낳고 일을 하게 되면서 난 더 이상 [내 집의 고요를 파괴할 수 없는 입장] 이 되어버렸다.
분명 내 집이었지만 나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게’ 되면서, 혼자 울 곳을 찾지 못하고 종종 삼켰다. 내가 울고 싶은 그 순간 어김없이 아이가, 엄마가, 시엄마가, 남편이 있었다.
내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기에, 그들의 분위기를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러면 안 되었다. 내 감정도 소중하지만 그 이상 소중한 게 지금 우리 집의 ‘시스템’과 ‘안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부가 둘 다 일하는 시스템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길게 유지하는 게 내 목표다.
최대한 별다른 일 (엄마가, 딸이, 며느리가, 아내가 펑펑 우는 그런 일) 없이 하루를 잘 마무리 하는 게 베스트임은 ‘난이도 하’ 수준의 상식이다.
이쯤되니 난 또 화가 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어디까지나 내 기준) 서울에 집을 샀으나, 전세로 원룸 살 때보다 오히려 마음껏 목 놓아 울 내 공간 하나 없는 이 아이러니!
나 집주인 맞니?
아 진짜 이것도 좀 울어야겠네.
임시방편으로 집밖을 탐색해보았다.
어느 날은 차안에서 좀 울어보고, 어느 날은 운동하고 오겠다고 나가서 잠시 달리기하며 좀 울기도 해봤는데 다 영~ 신통치 않더라.
난 진짜 좀 울어야 기분 해소가 되는 타입인지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래, 빠른 시일 안에 [내 작업실]을 가져야겠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눈물 쏟으며 울 다가 마음껏 코도 풀고 마음껏 음악 틀어놓고 춤도 출 수 있는 그런 작업실.
어머,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서 또 눈물 나려고 그러네! 그게 언제가 될 지 모른다는것 때문에 또 한번 눈물이 나고!
어서 속히 눈물 변비 없는 날을 꿈꾸며,
난 오늘도 서둘러 일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