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Jul 29. 2020

팔베개는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맙시다!

일자목 워킹맘의 도수치료 썰

의사선생님이 내 목에 알콜솜을 여러 번 문지르시며 주사 놓을 자리를 찾고 계셨다.

다른곳도 아닌 목덜미에 알콜솜이 휩쓸고 지나가자 공포가 극에 달했다.


“선생님. 너무 무서워요... ”


인자한 표정의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했다.


“환자분만 그런 게 아니고, 처음 맞을 땐 다들 무서워하세요. 어떤 분은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어요.”


아... 지금 그게 무슨소리신가요...? 선생님 제발 살살 아프지 않게 놔 주세요...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겨드랑이를 거쳐 팔뚝으로 무언가 묵직한 게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고, 약간 팔이 마비되는 듯 한 느낌이었다.  목 뒤와 양쪽 어깨에 각각 두 대씩 총 여섯 대의 주사를 맞고서야 진료실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을 완벽히 탈출한 건 그로부터 약 40여분 뒤다.

도수치료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부터 [팔 저림]이 있었는데, 엊그제부터 좀 더 심해져서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었고, 일자목과 거북목 진단을 받았다. 컴퓨터를 20년 이상 써 왔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더 심해지면 곧 목 디스크로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도수치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20대 후반정도 되어보이는 젊은 여자선생님이었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팔을 옆으로 편안히 펼쳐보세요. (편안히가 잘 안돼요) 손가락을 많이 쓰시나봐요! (네? 왜요?) 팔을 펴셨는데도 손가락들을 동그랗게 말고 계시잖아요. 이게 다른 분들보다 손을 많이 쓰셔서 자동적으로 더 굽어지게 된 거에요.”

헐... 정말 달걀을 쥐고 있는 줄!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내 손가락들이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마음이 더 편했는지, 나는 그때부터 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고 있거든요...”

(흑흑. 기획안 작업하느라 웹서치와 문서 타이핑을 많이 하긴 했다.)


“요즘 사무직 분들 다 그러시지요... 컴퓨터 쓰셔야 하니까.”

(흑흑. 저는 사무직도 아니거든요. 프리랜서 작가거든요.)


“일 하실 때 말고, 팔을 무리해서 사용하신 적 있으세요?”


그러자 내 마음속에 자꾸 걸리는 하나.

“제가 밤마다 애기 재울 때 팔베개를 해줬거든요...”


“아, 그것도 참 무리가 가죠.”


5살 아이가 잘 때 우리만의 루틴이 있다.

잠자리에서 책 3권 읽어주기. 화장실 다녀와서 짧은 기도하기. 아이 옆에서 팔베개 하고 재우기!

아이가 예뻐서 굿나잇~ 인사하며 꼭 껴안아주고 뺨에 뽀뽀해주는데, 껴안고 나면 아이는 내 팔을 잽싸게 잡아 제 머리 뒤로 넣어버린다.

“엄마 팔베개 너~무 좋아!” 라는 말을 하며 배시시 웃어대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너무 예뻐 선뜻 팔을 빼지 못하고 [그럼 딱 오분 만이다! 그때까지 잠들지 않으면 엄마 팔 뺀다!] 라는 말을 하면, [오케이!] 라고 말하는 아이. 이렇게 일 년 정도 해온 것 같다.


아이에게 매일 [팔베개] 해준 것이 꽤 오랜 시간 내 팔을 혹사시켜 왔으리라곤 생각 못했다.  

물론 팔베개가 내 어깨 통증과 팔 저림의 100% 원인은 아닐것이다.

직업 상 방송 모니터링, 기획안 작성 등을 위한 컴퓨터 작업을 요즘 들어 무리하게 했더니 더욱 심해진 것이리라.

내 손목 보호를 하겠다며 일찌감치 식기세척기까지 들여놨던 나인데, 아무리 이런저런 궁리를 해본다 한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내 몸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나보다.


아직 애는커녕 결혼도 안했을 것 같은 도수치료선생님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며 치료를 받다보니 목과 어깨, 팔이 한결 가벼워졌다.


반면 내 마음속은 한껏 무거워졌다.

나는 지금 일을 줄일 수가 없으니까 결국 [아이 팔베개]라도 줄여야 했다.


그날 밤, 역시나 아이가 냉큼 내 팔을 잡아끄는데, 팔을 빼내며 단호히 말했다.

“엄마 목 여기여기 반창고 보이지? 엄마 오늘 팔 아파서 주사를 6대나 맞고 왔어. 이제 앞으로 엄마는 팔베개 못해줘”

서운해서 시무룩해진 아이의 눈빛을 보았다. 몇 번 더 시도해도 안되자, 포기하고 자기 베개를 찾아와 그 위로 눕는 아이.


그날 밤 난 팔도 다시 저리고, 맘도 조금 저렸다.

이렇게 하나 둘 아이와 즐거웠던 것들을 끊어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안 좋았다.

나이 든 엄마가 일까지 한다고 몸관리 잘 못해서 아직 5살 우리 아들 팔베개도 이제 못해주겠네. 아, 정말 이게 뭐라고...


아이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참 많이 컸다. 이제 어린이의 모습이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말했다.  

‘은우야, 근데 너 그거 알아? 네 머리 이제 꽤 무겁긴 해. 네 머리 무거운 거 느낀 날부터, 엄마도 아빠한테 팔베개 해달라고 안한단다. ’


알고보면 나역시 신혼때 신랑 팔베개 엄청 했었다. 지금 우리 신랑도 목이 별로 안좋다.

신랑, 미안해 그동안 내 머리도 엄청 무거웠지!

인터넷 찾아보니까, 성인 1명의 머리는 5kg의 아령과 맞먹는 수준이라네?

(혹시나 해서 검색을 딱 한번 해봤어. 팔이 저리니까...)

그래도 내가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뿌리치진 않아줘서 고마워.

온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이제 팔베개는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맙시다!


선생님은 도수치료와 운동을 꾸준히 병행해야한다 하셨는데, 도수치료가 너무 비싸서 계속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분에 10만원, 40분에 19만원이었다. [도수치료]를 단발성으로 받게 되면 왠지 얼마 뒤에 다시 병이 [도졌수치료]를 받으러 갈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때까지 좀 더 내 몸을 관리해보겠다.

딱! 이 글까지만 쓰고 진짜 좀 쉬어봐야지!



이전 08화 워킹맘들은 다들 어디에서 우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