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으로 말하기 시작
수업을 시작하고 내내, 마치 단어를 알아도 문장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막막함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선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서 부끄러웠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 앞에 내 어설픈 그림을 내놓는 일은
마치 발가벗겨진 듯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드로잉 수업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수업이 시작됐다.
이름은 ‘나를 찾는 그림 여행’.
한 줄의 문장이 그림이 되도록, ‘나’의 해석을 담아 표현하는 수업이었다.
그 문장은 시여도, 노랫말이든, 소설 속 한 문장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무엇을 그리든 ‘나’라는 테마를 잊지 않는 것.
수업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 안에 적절한 논리성(문법)이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지켜야 감동을 준다.
수많은 텍스트를 담아 관찰하듯이 그리는 그림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림의 표현 방식이나 이야기의 스타일, 어법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맞고 틀림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언어와 이미지가 어우러진 표현,
그 자체가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수업 내용을 듣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물컹, 하고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어떤 문장을 그려볼까?’
고민하다가,
그 당시 내 안에 있던 감정을 ‘토이’의 노래 가사에 빌려 그리기로 했다.
그 순간,
깜깜했던 머릿속에서 감정과 이미지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어설프지만 내 이야기가 담긴 첫 그림.
그건 내 안에서 처음으로 진심이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모두가 각자 준비한 그림을 벽에 붙이고 함께 나눴다.
내 그림은 단순했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람은 자기만의 말하기를 가졌다.
그게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의 시작이다.”
“거북이 걸음이어도 괜찮다.
끝까지 가면 분명히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들은 칭찬이었다.
내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준 말이었다.
"메시지냐? 아름다움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
일러스트레이션은 메시지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글을 먼저 떠올리고,
어떤 사람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림만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텍스트와 함께 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그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림을 구상할 때는
내 안에서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정들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단순한 그림이어도
각 요소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상상되어야 하고,
그럴 때에만 **진짜 ‘리얼리티’**가 생긴다.
그림의 기술적인 부분은
끝까지 따라오는 숙제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감정에 충실한 그림을 그리는 것.
지금 보면 이불킥할 그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이 내 이야기의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그림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 이 글은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학교 HillS 7기 수업의 경험을 동인집을 참고하여 썼습니다. -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 진심이었던 이 그림이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