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호스텔 생활

by 미경

영국인, 에콰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인, 오스트리아인, 일본인, 일본계 미국인, 프랑스인, 그리고 귀여운 한국인 여동생 두 명까지 내가 속해 있던 호스텔 공동체는 금방 불어났다. 우리는 요리를 같이 해 먹고, 매일 밤 일정을 마치면 라운지룸에 모여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였고, 재미있는 영화를 골라 같이 보기도 했다. 자정이 넘으면 한 명씩 '잘 자, 내일 봐'라는 인사와 함께 각자의 방으로, 아니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으며, 몇 시간 후엔 주방에 한 명씩 나타나 '굿모닝'을 나누며 각자 아침 식사를 준비해 함께 식사를 들었다. 일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낮 동안 호스텔 어딘가에 모여 같이 음악을 듣고 수다를 떨었으며, 저녁이 되어 일을 하는 친구들이 돌아오면 함께 라운지룸으로 건너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단순한 생활 속 나는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겉모습을 가꾸지 않아도 괜찮았으며, 무엇을 잘하는 척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았으며, 끙끙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일을 함께하는 가족 같은 내 친구들은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항상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줄 것이며 나를 조건 없이 도와줄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부르기 위해, 나에게 오도록 하기 위해 전화해서 설득할 필요도 어딘가를 힘겹게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친구들은 나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늘 그 자리에서 나와 일상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 시간들은 나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불러일으켜주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 의도대로 즉, 흠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데 온 인생을 통째로 바쳤던 나에게,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드리워졌다.




아쉽게도 우리들은 여행자들이었고 결국에는 집으로 혹은 다른 여행지로 떠나야만 했다. 한국인 여동생들은 각 영국인, 일본계 미국인과 커플이 되어 둘의 시간을 조금 더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셰어하우스 더블배드룸을 구해서 나갔다. 에콰도르에서 온 친구들은 비자가 다 해 호주를 떠났으며 한 명은 집으로, 다른 한 명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 프랑스 친구도 비자가 다 해 집으로 돌아갔으며, 일본인, 오스트리아인 친구들은 비자 연장 조건을 맞추기 위해 근교의 농장으로 떠났다. 아직 호스텔에 남은 몇 친구들과는 계속해서 친하게 지냈지만 이전에 공동체가 주었던 광범위한 소속감은 사라졌다.


그 무렵 나는 이미 호스텔 팀 직원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비쳤는지, 호스텔에서 투숙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역할을 하며 숙박비를 일부 차감받고 있었다. 마리오카트, 핑퐁, 비어퐁과 같은 게임과 스포츠 이벤트부터, 퀴즈, 페인팅 등 여러 가지 사교 활동 이벤트까지 맡아했는데, 관광 비자가 끝날 무렵 학생 비자를 신청해 기다리면서 아직 합법적으로 일을 구해 할 수 있는 비자가 없던 나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줄일 정말 좋은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이벤트 진행을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호스텔 생활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게 했다.




얼마가 흘러 한 무리의 영국인 그룹이 호스텔에 도착했고, 호주인, 캐나다인과 영어가 아주 능숙한 독일인과 이탈리아인 등을 포함해 그룹의 덩치를 키워 거의 24시간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는 라운지룸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늘 아주 큰 소리로 대화를 하면서 자기 그룹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골라서 시청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생활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스페인, 이탈리아와 엘살바도르의 혼혈 등 스페인어권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본인들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늘 사용하는 까닭에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지루할 때가 많았다. 영어를 사용하고 싶지만 영국인 그룹과는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고, 스페인어권 그룹 친구들은 사람이 좋고 마음도 잘 통하지만 못 알아듣는, 내가 지금 배우고 싶은 말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느 주말 저녁,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자기와 가깝게 지내는 룩셈부르크인 생일 파티로 한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룩셈부르크인이랑 한 번 정도 인사한 사이였는데 별 약속도 없었고 한식을 먹으러 간다 하니 흔쾌히 따라나섰다. 일행은 그 외 이탈리아인 한 명과 일본인 두 명, 총 여섯 명이 오토바이 세 대에 나눠 타 시내 중심가로 향했는데, 나는 이탈리아인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게 되었다. 잘 모르는 친구였지만 별 문제없겠거니 했지만, 웬걸 과속과 급출발, 급정거를 하면서 운전을 위험하게 하더니 결국에는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결국에는 내가 탄 오토바이가 달려오던 보행자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내 복숭아뼈가 보행자에 부딪혔다. 운전하던 이탈리아인은 멈추지도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한참을 더 가 목적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사과 한 마디 없이 괜찮냐며, 내 잘못 아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는 이내 현장을 확인하러 다녀왔으며,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호주에서 유효한 면허가 없이 오토바이 운전을 했었고, 이 일로 이미 시드니에서 경찰에 적발이 되어서 몇 천불이나 되는 벌금을 조금씩 나누어 내고 있었으며, 이번에 또 적발이 되는 경우에 국외 추방이 예상되는 상태였다.


부상 직후의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그날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다음날부터 오른쪽 발이 부어왔고 오른쪽 발뒤꿈치를 내딛을 수가 없었다. 골절이나 금이 갔을까 봐 염려돼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싶었지만, 호주는 이 경우 우리나라처럼 정형외과를 방문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학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게 하는 소견서를 받고, 받은 소견서를 들고 엑스레이를 전문으로 찍는 장소에 가서 찍고 나면, 다시 의사를 방문해서 엑스레이를 가지고 상담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 모든 절차가 하루 만에 끝나는 것도 아니며 내야 하는 비용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다. 내가 이 모든 절차를 내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감수하자니 막막했고, 치료비를 보상해 달라고 이탈리아인에게 말할 경우 저 인면수심의 범죄자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사고 당일 괜찮았고, 발 디딜 때 불편한 정도이지 가만히 있을 때 통증이 심각한 것이 아니어서 뼈 부분 문제는 아닐 것이라 믿고 싶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불편함이 눈에 보이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침 근처 헬스장을 등록해서 열심히 다니던 참이었는데, 발 때문에 하체 운동은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매일같이 상체, 어깨와 등 위주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났을 까 양쪽 날개뼈 부근이 근육이 불편했는데, 폼롤러로 마사지를 하면 좋아질까 싶어 열심히 마사지해 보았지만, 불편함은 그대로였고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며칠 뒤 등 운동을 하다가 무언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그다음 날부터 한쪽 손목이 아프고 힘이 잘 들어가지 않기 시작했다. 이내 그 통증은 양쪽 손목 전체, 팔꿈치, 그리고 어깨까지 이르러 양손 모두 사용하는 게 상당히 불편한 지경이 되었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가져왔다. 일단 밥을 해 먹는 게 몹시 힘들었다. 외식비가 워낙 비싸고, 호스텔에서 이벤트 진행 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못한 나는 가진 돈을 아껴야 했기에 매 끼 해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손으로는 가장 작은 냄비 하나도 겨우 들까 말까였고, 그 외에 무언가를 조리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우울한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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