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서 찾은 공동체, 그리고 누사

by 미경

영어 학교 수업도 마쳐가고 당장이라도 누사로 떠나고 싶은데, 케러비안 친구에게 연락이 와 내가 들어가려면 열흘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수업은 모두 마쳤고 호스텔에서 지내면서 누사로 갈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학교를 마치니 더 이상 6시 30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밤 10시에 자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호스텔에서 살고 있는 애들이 밤 10시쯤 되면 건물 뒤편 테이블과 벤치가 여럿 놓여 있는 곳에 잔뜩 모여 술도 한 잔씩하고 신나게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닌가. 지난 한 달 반 지내면서 가까워진 친구들이 거기에 있길래 자연스레 합류해 술도 얻어먹고 아주 아주 신명 나게 수다를 떨다가 열두 시가 한참 넘어 자러 갔다. 그리고 누사 가기 전까지 매일 밤 이걸 반복하며 친했던 친구들과는 훨씬 더 가까워지고, 몰랐던 친구들과는 알아가며 친해졌다.


나는 주로 영국과 남미에서 온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다들 정말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물론 영어로 소통했는데, 영국인 친구는 영어가 모국어지만 최대한 쉬운 표현을 사용했고, 나나 다른 친구들이 어법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며, 유머러스함과 센스로 대화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에콰도르, 페루, 칠레 등 남미에서 온 친구들은 정말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졌고 그러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각자 살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각자 살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호주에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각자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굉장히 특별한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지구 정 반대편에서 날아온 우리가 지금 호주 브리즈번의 한 호스텔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가족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도하게 했고, 어떤 이야기에도 쉬이 웃을 수 있게 했다.




약속한 누사에 가는 날이 되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제 막 호스텔 생활의 진가를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떠나야 하다니. 열흘 전까지만 해도 호스텔 생활이 이 정도로 즐겁지는 않았고, 내가 속할 공동체를 아직 찾지 못했었기에, 나는 누사에 있는 셰어하우스 사람들과 지내며 호주 서퍼들과 교류할 생각이었다.


일단 누사에서 받은 좋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누사에서 지내면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당장은 셰어하우스에 내 방을 갖는 형태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스테이션왜건을 친구 집에 주차하는 형태로 지내기로 했기에 일, 이주의 아주 단기로 지내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짐을 싸서 누사로 운전해 갔다.




누사에서는 이 주만에 돌아왔다. 호스텔에서 가족이 된 친구들이 그립기 때문이었다. 누사의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 내가 쏙 반했던 그 집은 모두 그대로였지만 그 사이 브리즈번에서의 경험으로 내가 달라졌고, 이미 나의 가족이 된 브리즈번의 친구들을 두고 셰어하우스에서 새롭게 사람들을 알아가고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사의 성수기인 여름이 끝나가면서 대부분의 셰어하우스 메이트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다른 곳으로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가족이 되었고 이제는 흩어질 준비를 하는 그 공동체에 내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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