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사 서핑 페스티벌은 서핑 페스티벌이다 보니 바다와 해변을 비롯한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것에 많은 중요성을 두는 듯했다. 특히 누사 안팎, 혹은 호주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텐데,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적극적인 재활용을 통해서 최소화되도록 하는 것이 주최 측이 목표하는 바였고, 나는 사람들이 재활용 쓰레기통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안내함으로써 이 목표 달성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쓰레기를 버리는 구역에는 종이, 캔이나 병,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썩는 쓰레기, 그리고 태워서 처리해야만 하는 쓰레기 이렇게 네 가지 각기 다른 쓰레기통이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다가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쓰레기가 어느 통에 가야 맞을지 대화하며 알려주었다.
호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있는 터라 나는 정말 즐겁게 역할을 수행했다. 더군다나 대회장을 찾은 서핑 선수, 특히 누사에서 살면서 평소 누사에서 서핑을 자주 하는 사람들과 서핑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한국에서 서핑을 하던 내가 브리즈번에서 영어 공부를 하며 누사 서핑 페스티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흥미로워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자들이었는데, 호주인,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 브라질인 등 각기 다른 국적을 갖고 있었고, 다들 정말 밝고 재밌는 친구들이어서 근무 일정이 끝나면 같이 대회장 내 바에 가서 즐기기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었다. 봉사활동을 담당하는 주최 측 팀장은 특히나 내가 서퍼인 것을 알고 누사에서 살며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었는데, 필리핀 출신의 멋진 여자 서퍼가 나에게 보드를 빌려줘서 같이 서핑을 하기도 했다.
브리즈번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은 어느 저녁, 누사에서 지내던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로 돌아갔는데, 샤워 전 충전을 하려고 침대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않은가. 방 안은 샤워 전과 같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꿈을 꾼 것 같기도 해서 침대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는데 핸드폰은 간데없었다. 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리셉션에 가서 이야기도 했지만 내 핸드폰은 누군가가 아예 작정을 하고 훔쳐갔던 터였다. 리셉션 전화를 통해서 계속해서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듣자 하니 내 옆 침대를 쓰던 사람도 같은 시각 아이패드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브리즈번에서 지내던 호스텔은 대부분이 몇 달 이상의 장기숙박객인데 반해, 누사에서 지내는 호스텔은 여행자들이 아주 잠깐, 그것도 딱 하루씩만 묵고 가는 분위기였고, 내가 지내던 방은 무려 16명이나 함께 지내던 곳으로 어떻게 통제가 되는 곳이 아니었기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슬프게도 나는 핸드폰이 없이 브리즈번에 돌아가야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사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즐거워 다음 주 주말에 또 와서 봉사활동을 하겠노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도둑맞은 그 호스텔에 묵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숙소 부분에 있어서는 주최 측 팀장이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브리즈번서의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금요일 오후, 누사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번에는 누사 그레이하운드 버스 정류장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첫째 주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누사 서퍼인데 주최 측 팀장이 내 상황을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가 이번에 내가 두 밤 지낼 숙소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는데, 한참이나 숲 사이로 난 길을 운전해 들어가야만 했다. 그 길에는 브리즈번서는 볼 수 없었던 호주의 자연이 있었다. 드넓은 벌판, 방목하고 있는 소들, 하늘을 찌를 만큼 높은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선 숲길 등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고, 그렇게 도착한 그의 집도 오는 길에 걸맞게 근사했다. 집과 헛간, 카라반 등이 광활한 부지 안에 놓여 있었는데, 그 부지는 모두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부지 안 역시 야트막한 숲과 같은 자연이 조성되어 있었다. 부지 한가운 데에 있는 집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케러비안 지역 스타의 여러 가지 색깔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져 있었고, 스타일리시한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이 집은 셰어하우스로 이용되고 있었고, 여기에 살고 있던 이탈리아, 프랑스 여자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둘 다 참 예쁘고 멋져 보였다.
누사로 이사를 오고 싶어졌다. 호주 서퍼들과 함께 아름다운 누사 해변에서 서핑도 하고, 시내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고 싶었다. 누사 해변 앞에 있는 근사한 카페와 바,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고 누사에서 만난 호주 사람들과 더 활발히 교류를 이어가고 싶었다. 숲 속에 있는 근사한 집에서 살며 매일같이 호주의 대자연을 느끼고 싶어졌다.
내 바람을 말하자 케러비안 서퍼 친구는 이곳에서 살려면 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어차피 부산에서 매일같이 운전하고 지내던 터라 호주에서도 차를 사서 여행도 하며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계획에 어느 정도는 포함했었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었다. 그는 서핑과 여행이 목적이라면 밴이나 최소한 스테이션왜건 같이 뒷좌석에 침대 매트리스를 놓을 수 있는 사이즈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의 집에는 집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부지 안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 안에서 잠을 자면서 집 안에 있는 부엌이나, 거실과 샤워시설과 같은 공용시설을 이용하는 형태로 지낼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세를 훨씬 싸게 내면서 말이다.
영어 학교 수업은 일이 주 남짓 남아, 거의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나는 수업이 끝나면 누사로 이사 올 계획을 하고 중고차를 알아봤다. 한국에서 계획한 대로라면 6주의 수업을 추가로 신청해 수업을 들었어야겠지만, 나는 수업료에 조금 더 보태 차를 사는 것으로 계획을 완전히 틀었다. 호스텔에 지내던 칠레 출신의, 이전에 자동차 정비 일을 했었다는 친구가 페이스북을 함께 확인해 주며 나에게 적당한 매물을 골라주었다. 흰색의 스테이션왜건, 친구가 추천한 것 중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포드 팔콘, 호주에서만 출시되었던 모델로 엔진이 튼튼하고 내부가 넓어 짐을 옮기거나 여행용으로 유명한 차였다. 3,700불, 약간의 흥정을 하고 드디어 차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