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보고 와 '섬웨어 투 스테이'에 짐을 풀고 저녁 무렵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다.
"안녕, 오늘 집 보러 와줘서 고마워. 너 좋은 사람 같아. (그리고 귀여워 헤헤)"
괄호 안에 들어가 있는 저 말은 무슨 뜻일까? 그는 단순히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었을까? 앞으로 함께 셰어하우스에서 살게 될 사이이기 때문에? 브리즈번에 온 지 첫날,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던 나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고 일단 친절하게 답하기로 결정했다.
"집 보여줘서 고마워. 응 너도 좋은 사람 같아."
'좋은 사람'이라는 인사치레가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던 것일까? 그는 선을 확실히 넘어 애초에 자기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알려주었다.
"우리 단순히 셰어하우스 친구를 넘어선 사이가 되는 거 어때? 같이 캠핑 가서 별도 보고, 침대에서 꼭 안고 있기도 하고."
이런. 집 보기 전에 처음 연락을 주고받을 때부터 이 사람이 캠핑을 언급한 적이 있다. 자기가 브리즈번 외곽으로 캠핑을 자주 다닌다며 나를 데려가 줄 수 있다고 한 적이 있고, 브리즈번에 놀러 가는 나야 어떤 새로운 경험이든 환영하는 입장이었기에 흔쾌히 좋다고 하였는데,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단순히 셰어하우스를 공유하는 것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리고 나를 맞이했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고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던 나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 호스텔 8인실에서 같은 이층 침대를 공유하던, 내 침대의 일층에서 지내는 영국인 친구 벤자민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며 정확한 뜻을 좀 해석해 달라고 했다. 벤자민은 물론 메시지를 보자마자 크게 놀라며, 이 사람 위험한 사람이야. 이 사람한테서 멀어져라고 반복해 이야기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접어두고, 인터넷으로 계속해서 다른 집을 알아보았다. 다음 날 학교 끝나고 한 집을 보러 가는 약속을 잡았다.
등록한 수업 첫날, 같은 날 수업을 시작하는 모든 학생이 레벨 불문하고 한 장소에 모였다. 나는 한국에서 이미 레벨 테스트를 보고 갈 반을 확정하고 왔지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레벨 테스트가 진행되어 비슷한 시험을 한 번 더 보았다. 시험이 끝나고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약속한 집을 보러 갔다.
약속한 집은 강변에 위치한 조용하고 예쁜 동네에 있었다. 두 동양인 여성이 나를 반겨주었는데, 둘은 모녀 사이로 대만에서 왔다. 40대로 보이는 딸은 10대 때 호주에 건너와 공부를 마치고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근처에서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대만에서 교사로 일하다 얼마 전 은퇴하고 딸이 살고 있는 호주로 넘어왔다고 했다. 집은 어머니를 위해 딸이 사 두었고, 어머니가 이 집에서 살고 딸은 어머니를 보러 자주 방문할 에정이라고 했다.
집을 보고 잠시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집을 보러 온 다른 동양인 여성이 도착했다. 예쁘장한 생김새와 밝고 시원시원한 인상의 그녀는 일본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영어 공부 겸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다고 했다. 영어는 이미 상당히 잘하는 편으로 보였다. 집에 방이 두 개 있어서 이 친구와 내가 둘 다 와서 살 수 있었고, 집주인 모녀는 그걸 원하는 듯했다.
집 자체나 동네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딸이 정말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기에 이곳에 살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호주에 있으면서 영어를 늘리는 것이 나의 목적인데 반해, 이 집에 살면 집주인 어머니와 영어보다는 중국어로 소통하는 일이 많을 것 같아 염려됐다.
집에서 나와 걸어가면서 일본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둘 다 집을 보고 있는 입장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다 보니 금방 이야기를 트게 되었다. 전날 본 남자 집주인의 이상한 메시지 이야기를 했더니, 이 친구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금세 서로 공감하게 되었고, 곧 한 번 만나 놀자며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일단 이상한 남자 집주인집보다는 이 대만 모녀 집이 훨씬 낫다는 것이 명백했고, 최소한 들어가 살 곳이 없는 것은 아니게 되었기에, 집주인한테 확실히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메시지 창을 열었는데 그가 '집 청소 다 됐어.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도 돼'라고 건조하게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아마 자신의 제안에 내가 답을 하지 않자, 조금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했다. 나는 '나 너네 집 안 갈 거야. 그리고 너 문자 메시지 날 상당히 불편하게 해.'라고 보내고 그를 인터넷 웹사이트 측에 신고하고 대화를 전부 삭제했다.
이렇게 이상한 집주인과의 대화는 일단락되었고, 다음 날 집을 한 군데 더 보러 다녀왔다. 그런데 나와 같은 이층 침대를 쓰던 벤자민이, 본인은 이 호스텔, 이 침대에서 3개월째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3개월 전에 처음 이 방에 와서 이 침대를 보았을 때는 이 거지 같은 곳에 절대 오래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내가 지내던 방은 호스텔에서 가장 싼, 8명이 한 방에서 자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딸려 있지 않은 방이기 때문이었다. 건물 뒤편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쪽에 있어서 늘 어두컴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는 지내다 보니 썩 지낼 만했다며, 특히나 내가 영어를 늘리는 게 목적이라면 여기에서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어를 많이 쓰는 게 목적에 부합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와 각자 지내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공감과 지지, 응원을 해 주었고, 그를 통해 이미 이 호스텔에 지내는 것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