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교 수업은 평일 아침 8시부터 오후 12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수업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았다. 나는 캠브리지라는 영국에서 주관하는 한 시험을 준비하는 커리큘럼을 가진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 구성이 좋다는 것은 2008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계획할 때부터 캠브리지 반으로만 알아봤다. 2명의 중년의 여자 선생님들은 전문적이면서도 열정적이었다. 두 분 다 상당한 경력을 가진 분들로 세월에서 나오는 연륜이 있으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하고 이 공간에 있어서 기쁘다는 느낌이 늘 퍼져 나왔다. 덕분에 매 시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은 아시아, 남미 권에서 고루 왔는데, 콜롬비아 학생들이 8명 정도로 전체 학생의 반 가량에 달했다. 그 외에는 베네수엘라, 페루, 중국, 홍콩, 나 외에 다른 한국인 여성 한 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 실력을 어느 정도 요하는 반이고, 이 반 이후에 직업학교 전문 과정으로 이어질 정도로 레벨이 있고 호주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다들 진지하게 수업을 들었다.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들의 경우 변호사 일을 하다 온 친구도 있었고,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굉장히 영특해 보이는 친구, 향후 이곳에서 간호학을 전공할 예정인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듯한 친구도 있었다. 변호사 일을 하다 온 젊은 여자 친구는 호주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어린이를 좋아한다며 나중에 어린이와 관련된 법 규제 쪽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호주에 온 것은 콜롬비아에서 사귀었던 남자 친구의 영향이 컸는데, 이 친구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남자 친구가 호주로 함께 가는 것을 강하게 주장해서 같이 왔더니 결국엔 헤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호주가 좋아서 남아 있는 중이다. 그리고는 만약 내가 호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함께 보내는 아름다운 순간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자기는 과거의 선택에 만족한다며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친구와 광저우에서 온 친구는 둘 다 건축가로 일을 하다 왔는데 역시 전공을 살려서 이후 엔지니어링이나 가능하면 건축 쪽으로 호주에서 자리를 잡고 싶어 했다. 광저우에서 온 친구는 나보다 한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언니 격이었는데, 알고 보니 사랑을 찾아왔다. 이 언니가 광저우에서 건축가로 일하며 살고 있을 때 친구가 놀자고 불러 나가 보았더니 호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늠름해 보이는 중국계 남자가 있었고, 이 남자가 광저우에 놀러 와서 보낸 그 짧은 시간 동안 둘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 후로 이 년여간 중국 광저우와 호주 브리즈번 사이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언니가 이 호주 남자와 함께 하고 싶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넘어왔다. 언니는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훠궈 집에서 일을 했다.
홍콩에서 온 친구는 아마 광저우 언니랑 비슷한 나이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오빠는 몇 년 전 홍콩의 대 중국 시위를 불러오게 한 정치적 불안함 때문에 나라를 떠나 왔다. 이 홍콩 오빠는 사실 자기의 삶 자체만 놓고 보자면 홍콩에서 지내는 게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배드민턴 코치로 일했다고 했는데 상당히 자리 잡았는지 직업적인 만족감도 크고, 좋은 친구들도 주변에 많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이제 막 12살이 되어 자라고 있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홍콩에 머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는 사무직에서 일하는 듯했는데 자신보다 벌이가 더 좋아 자기가 일을 그만두고 아들과 함께 먼저 호주로 넘어왔다고 했다. 아들은 호주 중학교에 다니는 중이고, 이 오빠의 누나 동생 등 다른 가족들까지 넘어와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홍콩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호주에서 홍콩 난민 비자를 제공하는 중이라고 그 비자 신청 과정에 있다고 했다.
나 외 다른 한 명의 한국인, 한국에서 온 언니는 특허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는데 일이 년의 휴직을 하고 역시 12살 정도 되는 아들과 함께 브리즈번에 와서 아들은 호주 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휴직 기간이 끝나면 돌아갈 예정이었다.
TAFE라는 호주 직업 전문학교 부설 영어학교로 등록을 해서 인지 수업의 질도 좋았고 학생들도 수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편이었다. 특히 학생들이 대부분 나이가 있고 각자 나라에서 사회생활을 충분히 하다 온 편이어서 같이 수업 듣기에 편했다.
지내는 호스텔에서 걸어서 15, 20분 정도 거리에 학교가 있었고, 아침을 먹고 이때는 화장도 하고 가고 싶어서 6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씻고 샌드위치를 준비해 먹고 나갔다. 최소한 8시간은 자 줘야 했기에 6시 반에 일어나려면 10시에는 침대에 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 침대로 가도 한참을 멀뚱멀뚱 잠이 안 들기가 일쑤였고 늘 잠이 부족한 채로 아침에 부랴부랴 나가서는 4시간 바짝 집중해서 수업 듣고 돌아오면, 돌아오는 길이 덥기도 했고 진이 이미 쭉 빠져 점심 먹고 낮잠을 꼭 자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