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소화불량으로 올 경우, 내 경우에 한해 말하건대, 몸살이 자주 온다. 소화가 잘 안 되면 내 몸이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기운이 없으니 누워있어야 하는데 매일 누워있을 수 없으니 일을 하고 나가서 활동도 하다 보면 먹은 것을 바탕으로 내가 낼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금방 초과하게 되고 그러면 온몸이 아프고 기운 없어 몸져눕는 몸살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나는 이런 나를 두고 '체력이 약하다'며 비난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체력이 좀 약하다 한들 그럴 수도 있는 것인데, 이 무한 경쟁 현대 사회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내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입장에서 그것은 나의 결정적 경함이자 미래 혹은 현재의 내 고용인에게, 내 경쟁자가 아닌 나를 선택한 그에게 큰 폐가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체력이 약했는지 어쨌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정해진 업무 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초과 근무하며 내 모든 집중력을 다 발휘해 일을 하고, 늘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고 기한을 맞추었으며 일과 관련해 아무 큰 실수도 없던 상황에서도 늘 저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가 업무적으로 꽤나 괜찮은 변호사였다는 것은 일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 사실이다.
소화불량으로 정신과를 찾게 된 것은 발리에서 돌아온 몇 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다. 내과 여러 군데를 다니며 각종 약을 처방받아먹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한약도 지어먹었는데도 도통 좋아질 기미가 없어 결국에는 만성 소화불량 치료로 유명하다는 큰 대학 병원을 찾아 80만 원 정도 들여서 소화기관에 관련된 온갖 검사를 다 받았다. 장기에 이상은 없다는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시켜 주며 매끼 먹을 소화제를 처방해 주며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배를 살살 문지르며 자주 마사지 해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부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똑같은 얘기를 듣고, 점점 효과가 덜 해져만 가는 똑같은 소화제를 처방받으러 몇 달째 서울을 올라오다가 답답한 마음에 약을 좀 바꿔달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했다. 담당 의사는 마치 나한테 공격이라도 받은 냥 기분 나쁜 표정을 잠시 보이더니 이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약을 좀 드릴까요?'라고 환자 대하는, 이제는 단순 소화불량을 넘어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으로 압도된 환자를, 공감은 되지 않지만 어서 진정시켜 자기 공간 밖으로 보내려는 태도를 취했다.
결국 소화제에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섞은 약처방을 삼 개월 치나 받았지만, 과연 나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며 이게 어떻게 소화불량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대화는 당일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받은 것이기에 약을 받고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 원하는 만큼의 상담 없이 내과 의사한테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처방받아먹을 바에야 정신과 전문의와 충분한 소통을 하고 그가 얼마나 나를 이해하고 약을 처방하는지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자주 방문하면서 복약에 대한 섬세한 지도를 받고 약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당시 살던 곳에서 멀지 않아 자주 오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 상담을 잘해주는 전문의를 찾아 방문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환자로 간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썩 좋은 인상을 주는 경험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주일에 한 번 약을 타러 가는 엄마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당시는 신경정신과로 불리던 의원에 갔고, 대기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멀뚱멀뚱 있다가 보면 가끔씩 의사 선생님이 나를 진료실로 불러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곤 했다. 당시에는 정말 내 안부가 궁금해서 물어보는가 보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현병 환자인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어린 딸의 정신 건강은 괜찮은지 별다른 증상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하였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정신과 의원해 방문해 대기실에 앉아 있는 것은 어린 보호자로서만 해 보았고, 정신과 의원을 방문하는 환자이라면 늘 우리 엄마 같은 중증의 사회생활이 불가한 사람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정말 환자로서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환자로 등록하고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몹시 긴장이 되면서 많은 감정이 오갔다.
전문의 선생님은 엄청난 환대로 나를 맞이해 주었고, 나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려 표정으로, 따듯한 말로 많은 노력을 하였던 것 같다. 서울 대학병원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알려주었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용량이 너무 과하다며 본인과 함께 적정 용량과 더 잘 맞을 법한 종류의 약으로 같이 시작해 보자고 했다.
조현병은 유전이 가능한 병이지만 지금 내 나이는 병 발현이 가장 높은 나이를 이미 지났다며 나를 안심시키면서도 검사를 통해 발현 인자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하였고, 물론 문제였던 소화불량에 대해서는 내가 별 설명을 안 하더라도 어떤 부분으로 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의원을 방문해, 처방받은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소화에 도움이 어느 정도 되는지, 낮 시간 대 졸음이나 활동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최근 어떤 경험과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내 감정은 어떠한지에 대한 상세한 상담과 소통을 통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약과 용량을 발견해 나가는 한편. 선생님 개인의 경험 공유를 곁들인 강력한 정서적 지지도 얻었고, 수 주후 이 주일에 한번 내원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당시는 2023년 하반기,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전 세계적으로 완전히 진정이 되었고, 가장 늦게까지 외국인에게 국경을 열지 않던 호주도 국경을 연 지 한참이나 되었다. 발리에서 만나던 남자친구와는 떨어져 있는 동안 점차 멀어져 발리에서 돌아온 지 반년쯤 되던 해에 내가 정식으로 관계를 정리하자고 하였다. 그 후 한국에서 1년 반 넘게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정신과 방문 직전 즈음에 관계가 정리가 되었고 호주에 갈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짐이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