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와 소화불량

by 미경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발리에서 지내면서 회사 다닐 때보다 한층 더 심해진 소화 불량을 고치는 일이었다. 회사에 아직 다니고 있던 중 대만을 휴가차 세 번 정도 방문했었는데, 여행이고 음식 문화 다른 나라니까 상비약이자 필수품 차 평소 일할 때 달고 살던 소화제며 위장약을 가지고 가도 전혀 필요가 없었다. 대만에 도착하는 그 즉시 소화가 아주 잘 되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위장도 있는 내내 통증 없이 아주 편했다. 그래서 아, 이건 직장을 그만두어야 낳는 병이구나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그 좋다는 발리까지 날아왔는데, 이게 웬걸, 발리 온 첫날부터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발리는 사계절이 습한 열대 지방에 있어서인지, 경험상 수분감이 적은 요리가 주로 발달한 것 같다. 끓이거나 찌는 것과 같이 조리 과정에서 습기가 발생하는 것보다 굽거나 튀기는 것 같이 습기를 최소화한 조리법이 더 선호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식 국물 면요리, 만두 요리를 하는 음식점을 갔다가 요리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어도 덥고 습한 날씨에 재료를 찌고 끓이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는 걸 보고 내 부족한 이론에 확신이 갔다. 또, 덥고 습해 조리한 음식이 빨리 쉬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음식에 물기를 최소화하면 보존에 유리한 것 같기도 했다. 아주 단순하게는 더운데 뜨거운 국물 먹으면 더 덥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국물요리는 추운 겨울날 더 찾게 되지 않는가.


발리에서 내 소화 불량이 심해진 것을 음식 문화 탓을 할 수는 없다마는, 내 경우에는 이렇게 매 끼니 국물 없고 바짝 마른 음식들을 씹어 삼키는 것이 영 편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현지 식당은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으니 야외 혹은 그늘만 쳐진 반 야외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먹었더니 음식이 더욱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더해, 발리는 식사를 빨리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열대 지방답게 개미와 같은 작은 곤충들이 많아서, 우리나라처럼 친구나 가족과 수다라도 떨면서 식사를 음미하다가는 이내 곤충들과 함께 식사를 공유하게 되는 지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티를 하거나 사람을 초대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상에 음식을 거하게 펼쳐놓고 오랫동안 음식을 음미하는 문화가 없고, 곤충의 공격이 가장 적을 것 같은 한 곳에 마련한 음식들을 냄비째 가져다 놓고 손님이 먹을 만큼 뷔페식으로 덜어와 얼른 먹고 먹은 흔적을 정리하고 술이면 술, 디저트면 디저트와 같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수년간의 소화불량으로 고생한 내 위장으로는 도무지 발리 사람들의 식사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고, 일행들이 식사 다 마치고 아직 반도 다 못 먹은 나를 안쓰러운 듯이 지켜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상은 한국에서 일을 할 때 남자 동료들과 식사를 하며 눈치를 보다 체하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점점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피하게 되었고, 혼자 먹거나 남자친구와만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남자친구에게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설명했더니 고맙게도 식사 속도를 맞춰 주어 그 부분에 있어서는 불편하지 않게 하였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식사에 껴 있으면 무조건 체했고, 결국에는 그 식사 자리를 만든 남자친구를 탓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음식을 해서 먹으면 되지 않겠냐 싶겠지만 발리는 외식비가 상당히 저렴하고 외식 문화가 발달된 탓에 발리에 있는 대부분의 여행자 숙소에는 부엌이 딸려있지 않다. 어떻게 부엌이 있는 곳을 한 번씩 가서 요리를 할까 해도 재료비며 그 더운 날씨에 요리하는 품을 생각하면 그냥 한 끼 밖에서 때우고 말지 하는 말이 나온다. 혹은 건조한 현지식 말고 한국식이나 중국식처럼 우리 입맛에 더 맞는 것을 먹으려고 하면 가격 차이가 곧바로 배가 넘게 나고 그렇다고 꼭 속을 편하게 하거나 고향의 맛 같은 나를 품어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것도 내가 나의 불편한 점을 바로보고, 어떻게 하면 먹는 부분에 있어서 나의 불편함을 가장 잘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해서 노력했다면 조금은 나았을 일이다. 문제는 내가 무언가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어떤 부분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건 그냥 참아내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내 좋고 싫음, 나아가 내 취향을 따졌던 적이 있었던가? 그보다는 삶에 필요한 무언가가 없고 있음이 컸다. 없으면 늘 없는 것이니까 달리 아쉬울 게 없고, 있으면 아주 횡재할 만큼 기쁜 노릇이기 때문에 좋다 싫다 평가하며 불평할 여유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돈, 시간, 도움과 같이 자원은 없는데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은 이렇게 주어진 자원을 감지덕지하며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운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동안 인내심은 자동으로 쌓인다.


문제는 언제 인내를 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동안 썼던 인내가 공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언젠가 한 번 크게 지난 세월 무한정으로 써온 인내에 값을 치를 때가 온다. 그게 마음으로 오다가 그걸 무시하면 몸으로 온다.


내 경우에는 소화불량으로 그게 왔음에도 오랜 시간 내 몸을 탓하며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직장을 떠나는 날 소화제를 끊게 될 줄 알았는데, 직장을 떠나 발리에 오니, 이제는 일을 하지 않는 동안 몸과 마음을 잘 회복해서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나의 업무로 두게 되었고, 직장에서 도망쳐 온 곳에서 또 다른 직장을 만들고 있는 나에게서 도망칠 방법이 없었기에 소화불량이 점점 더 심해졌던 것이다.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나기 전까지 이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위 내시경을 하고,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되었다며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항생제로 위장이 약해져 처방받은 소화제를 매 끼니 먹고 지냈지만 내 소화기능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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